"지역 종합문예지 16년 뚝심으로 '문학상' 제정합니다"
지역에서 종합문예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광주의 한 종합문예지에서 창간 16년를 기념으로 ‘문학상’까지 제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뚝심이 놀랍고, 내용이 궁금했다.
지난 8일 오후 광주에서 수산물시장으로 유명한 남광주시장 인근 도서출판 심미안의 사무실에서 계간 <문학들> 발행인 송광룡(57)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아름다움을 살피는 눈’이라는 뜻이 담긴 도서출판 심미안의 대표이기도 하다. 냉동수산 건물 2층에 있는 66㎡(20평) 규모 출판사 사무실이 <문학들> 발행의 산실이었다.
2005년 지역 문인 40여명 ‘창간’
“삶과 문학 다양성 존중하는 편집”
한때 중단 위기…문인들 후원 ‘회생’
‘전국 젊은 문인들이 찾는 문예지’
대학시절 ‘오월문학상’ 수상 시인
“마음에서 우러나는 시 쓰고 싶어”
출판인인 송 대표가 종합문예지 발행인을 맡은 것은 그가 워낙 시인이기도 해서다. 전남대 시절 ‘용봉문학회’ 회원이었던 그는 ‘제1회 오월문학상’의 시 부문 공동 수상자이기도 하다. 고 문병란 시인이 심사위원장이었다. 1998년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종합문예지 발행은 지역 문인들의 오랜 소망이었다”고 했다. 선배 문인들은 2004년 송 대표를 만날 때마다 “니가 출판사를 하고 있응께 한번 해보자”며 창간을 권유했다. 잡지 <금호문화>에서 기자로 10년간 글을 쓰다가 2001년 그만둔 뒤 출판사를 꾸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지역 문인들과 남광주시장의 단골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문예지 발간을 꿈꿨다.
계간 <문학들> 창간 발기인 모임은 2005년 3월에 열렸다. 송기숙·한승원·이명한·김준태 등 문단 원로와 나종영·채희윤·고재종·임동확·김형중·이화경 등 중견 문인 40여명이 동행에 나섰다. 가장 힘든 것은 문예지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었다. “삶과 문학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편집방향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제호에 ‘들’을 붙였다. 2005년 9월 창간호가 나왔다. 매호 “지역성만 강조하면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문학주의를 고수하면 ‘메이저’ 잡지와 차별화될 수 없다”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2010년 발행 중단 위기에 처했을 땐 지역 문인들의 구독료 자동이체 후원으로 살아남았다.
그렇게 버텨오면서 어느새 지난해 ‘겨울 통권 62호’를 냈다. <문학들>은 그간 주류 잡지에서 잘 눈여겨보지 않았던 변방 신인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했다. 신좌파 평론 ‘뉴광주 리뷰’를 통해 광주의 지역적 특성인 5·18 관련 담론을 제시하기도 했고, ‘이야기들’에선 노동자·성적 소수자·다문화가족 등 약자들의 삶과 문학을 담았다. ‘코로나19 시대 이방에서 문학하기’처럼 특집 기획도 마련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 조선대 교수(국문학과)만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7년 3기 편집위원으로 이기호·조형래·김주선 등 주목받는 젊은 문인들이 가세했다.
<문학들>은 “광주에서 나오지만, 전국의 젊은 문인들이 찾는 문예잡지”라는 문단의 평을 받게 됐다. 창간 1년 만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예지로 선정됐고, 올해는 ‘문학창작산실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대상에 포함됐다. 2006년부터 시·소설 부문 10여명에게 ‘신인상’을 주며 격려하고 있다.
송 대표는 “문예잡지가 ‘문단의 권력’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문예지라는 지금까지의 평가를 쭉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들>의 새로운 목표는 ‘올해의 작품상’을 제정하는 것이다. 심사시점(8월31일)을 기준으로 직전 1년 동안 발간된 작품들과 <문학들>에 발표된 시와 소설들이 심사 대상이다. 송 대표는 “재원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 꼭 필요한 일이라는 공감대를 편집진과 나눴다”고 말했다.
<문학들>의 원천인 심미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송 대표는 직원 5명과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있다. 심미안의 눈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은 지금껏 570여종에 이른다. 주로 인문·교양·지역 분야다. 그는 “지역 출판사에선 ‘베스트셀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역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심미안에서 낸 <5·18 우리들의 이야기>, <스물두 살 박기순>, <광주 모노그패르1-길>, <소쇄원> 등은 꾸준히 찾는 책들이다. 자회사인 ‘문학들’ 출판사에서 펴낸 ‘문학들 시선·소설선’도 내고 있다. 송 대표는 2016년 2월 ‘제36회 한국출판학회상’ 기획·편집부문 상을 받았다.
송 대표의 꿈은 다시 시로 돌아가는 것이다. 20년 남짓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모아 책으로 엮으면서 “시를 읽는 눈만 더 섬세해진 상태”다. 그래서 요즘은 광주에서 발행되는 문화잡지 <전라도닷컴>에 다달이 ‘시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동료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2015년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으로부터 시가 우러 나오기 시작”했다는 그는 “요즘은 ‘평범한’ 서정시를 쓰고 있어요. 하지만 의식을 하지 않더라도 작품에 시대정신같은 게 나오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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