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대중문화로 읽어낸 '박정희 시대'

박영서 2021. 2. 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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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나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4년 발표한 '동백아가씨'의 빅히트로 순식간에 스타가 된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가였던 이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 책은 이런 대중문화를 통해 '박정희 시대'(1961~1979년)를 조명한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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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이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열아홉 나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1964년 발표한 '동백아가씨'의 빅히트로 순식간에 스타가 된다.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가였던 이 트로트는 한국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동백아가씨' 레코드 판을 사려면 인기 없는 다른 판 몇 개를 함께 사야지 살 수 있었을 정도였다. 이미자에 따르면 당시 100만장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 '왜색(倭色)이 짙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방송 금지곡이 된다. 뒤이어 음반까지 판매가 중단된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이 한일수교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해 온 나라가 술렁거리고 있던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동백아가씨'는 딱 좋은 표적이었다. 한일수교 추진에 대한 국내의 반발 여론이 예상보다 심각하자 박 정권은 이 노래를 '반일감정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가요,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는 대중들의 마음과 삶의 속살, 당시 상황도 비쳐져있어 시대를 뜯어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대중문화를 통해 '박정희 시대'(1961~1979년)를 조명한다. 예컨대 한국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김승호 주연의 '박서방'(1960)과 '마부'(1961)에는 자유보다는 근면·성실함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담겨있다. 이는 민심의 일부였으며 군사정권은 이러한 민심에 올라탔다. 1967년 2월 개봉한 '팔도강산'은 조국 근대화를 과시하려는 정권의 노골적인 홍보영화였다. 그해 5월에 대통령 선거가, 6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선거 승리'는 정권의 당면과제였다. 선거 직전에 전국적으로 이 영화의 무료 관람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국부(國父)의 탄신 축하 노래를 지어바쳤던 이승만 정권때 보다는 홍보전략이 정교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1970년대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진보적 청년문화를, '대마초 사건'은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일면을 각각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박정희 시대'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하지만 그저 소리없이 세상을 살아갔던 대중들이 만들어낸 대중문화를 통해 그 때를 읽어내는 일은 꽤나 피부에 와닿는 역사 읽기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정권이 끝난 지도 40년이 넘었지만 그 시대를 반추하고 싶다면 이 책은 도움을 줄 것이다.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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