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아이폰 부품업체가 귀뚜라미 키운다
지난 주말 일본 최악의 재해로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지 10년 만에 같은 진원지로 추정되는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다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인들은 당시 대지진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번 지진이 또 다른 대지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당시의 지진은 진도 9.1이라는 일본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초대형 쓰나미를 불러와 급기야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원인이 됐다.
이 재해는 인명피해는 물론 여러 기업들에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줬는데 그 중 전력공급 차질로 엄청난 생산차질을 겪었던 일본의 한 IT 관련업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귀뚜라미로 돈을 벌고 있는 기발한 혁신사례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전자기기 내 회로패턴을 보호하는 잉크솔더레지스트의 제조 및 판매를 주로 하는 도쿄증권거래소 상장회사인 '태양홀딩스' 산하 기업인 '태양그린에너지'가 그 주인공이다.
주로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 쓰이는 부품 수출업을 해왔던 모기업 태양홀딩스는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본사가 있던 사이타마현에서 시행했던 계획정전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위기를 겪으며 언제든 큰 재해가 발생해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전력과 물을 직접 조달할 수 있게 하려고 태양광 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사업에 뛰어드는데 이 때 설립한 회사가 태양그린에너지다.
이 회사는 우선 공장 부근에 있는 연못의 사용권을 획득한 후 수면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서 전기를 얻어내는 수상 태양광 발전을 시작했으며 자체 공장에 상당량의 전기를 직접 조달할 수 있을 정도까지 확대한 결과 애플이 선정하는 '청정에너지 프로그램' 생산업체로 선정되기도 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회사는 연못의 물과 태양광을 활용한 농작물 재배업까지 사업을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재배방식을 당시의 첨단기법인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물고기 양식(Aquaculture)과 수경재배(Hydroponics)의 합성어) 즉, 물고기를 키우면서 발생되는 유기물을 이용해 식물을 수경재배하는 순환형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IT부품업체가 태양광사업에 이어 농작물과 물고기 양식까지 사업영역이 확대된 것인데 이에 만족하지 않은 경영진은 2018년에 미래의 첨단식량 분야인 곤충사업에 눈을 뜨고 특히 그 중에서 가장 효율이 높다고 하는 귀뚜라미 사육을 감행하게 된다.
이 기발한 순환형 공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먼저 수경재배된 야채, 과일의 뿌리와 줄기 등의 남은 잔재물을 먹이로 사육된 귀뚜라미를 양식 물고기가 먹고, 양식 물고기 양분을 포함한 배수를 농작물에 제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농작물을 통해 정화된 물을 다시 수조로 돌려주는 일련의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서 농약이나 비료가 전혀 필요없는 완전무결 친환경인 것이다.
그런데 작년 5월에 이 귀뚜라미와 관련한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며 이 'IT회사'의 미래사업 구도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기존 귀뚜라미 사육의 목적이 물고기 사료나 애완견 사료용이었으나 사람의 식용으로 추가 개발한 파우더를 활용해 만든 센베이(일본식 전통과자)가 일본의 가장 유명한 라이프스타일 숍인 '무인양품'에서 출시 3시간만에 완판된 것이다. 이후 귀뚜라미 빵과 바게트가 대기업에서 출시되고 귀뚜라미를 우려낸 국물라멘이 하루에 90~100 그릇이 팔리는 가게가 생기는 등 인기만발이다.
100그램 당 단백질 질량이 소의 3배인 60그램인데다 사육의 용이성, 비교불가한 성장속도, 뛰어난 잡식성 등 많은 장점들을 가진 귀뚜라미가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유럽에서는 미래의 영순위 대체식량으로 명성이 꽤 높았는데 일본시장에서도 이번에 제대로 먹힌 것이다. 아직은 시장이 미미하지만 식량부족이 확실한 미래에 이 고단백 곤충사업이 이 회사의 향후 핵심엔진이 될 게 분명해진 것이다.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의 혁신(革新)을 제대로 보여준 놀랄만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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