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24시]'나의 왼발' 하나로 58세에 박사 된 이범식 씨

윤두열 기자 2021. 2. 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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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다리 하나로 '박사 학위' 딴 이범식 씨 스토리
〈이 기사는 이범식 씨가 보내온 글과 기자가 직접 인터뷰 한 내용을 1인칭으로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이범식 씨가 왼발에 연필을 끼워 글자를 적는 모습 [사진=이범식 씨 제공]

찰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신주 위에서 일을 하다가 눈앞이 번쩍했습니다.
깨어보니 트럭 위에 누워 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온몸이 아팠습니다.
중환자실에서 2주 동안 사경을 헤맸습니다.
기력을 겨우 회복하니 의사가 말을 하더군요.
"두 팔을 잘라내야 합니다."
수술은 잘 끝났고 남은 두 다리로 세상 씩씩하게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번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인생은 그렇게 달라졌습니다.
제 나이 22살 때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선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지 않고선 살아내지를 못했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대구에는 흔치 않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세상이 변해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보며 세상 한번 다시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다시 사는 인생의 첫 걸음마는 글쓰기였습니다.
왼쪽 발가락 사이에 펜을 끼웠습니다.
하루 2시간씩 1년을 꼬박 썼습니다.
누가 때리 듯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팠습니다.
글을 쓸 수 있게 되니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컴퓨터를 배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자격지심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결국 해고를 당했고 그 즈음 시작한 사업들도 모두 실패해 결국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이범식 씨 부부 [사진=이범식 씨 제공]
아내가 큰 힘이 됐습니다.
아내와 함께 못 쓰는 컴퓨터를 기증받아 수리해 장애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장애인 재활을 위한 컴퓨터 교육장도 만들었습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부채를 갚아 2010년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고 나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2011년 한 전문대학 야간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40대 중반이 되어서 깨달았습니다.
4년제 대학 산업복지학과에 편입을 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욕심이 더 생겼습니다.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허리를 바짝 숙여야 하니 책을 읽어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컴퓨터 자판 치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 물었습니다.
이제 이틀 뒤(19일)면 전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중도장애인의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장애에 대한 심리적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실, 제 인생 이야기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는 '우공이산(愚公移山)'입니다.
남들이 못 할 거라고 했지만 묵묵히 산을 옮겨 왔습니다.
또 많은 산을 넘고 넘어왔습니다.
이제 다른 산을 넘으려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맵니다.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가정에 기여하고, 사회에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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