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했던 압구정동 정비구역이 재건축 조합설립 서두르는 까닭은?

최종훈 2021. 2. 17. 18: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잇따라 조합설립 총회, 인가 신청
재건축 기대감에 매맷값도 초강세
'조합설립 인가' 이후 매수는 현금청산 탓
전문가 "추격 매수 위험할 수도"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시장에서 ‘규제의 역설’ 아니냐는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해 정부가 ‘6·17 대책’에서 내놓은 규제가 역설적으로 그간 지지부진하던 압구정동의 재건축 추진에 동력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른바 ‘현금청산’을 피하려는 막바지 매매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뿐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오는 28일 조합설립총회를 개최하는 압구정3구역(현대1~7차, 10·13·14차·대림빌라트) 현대2차 아파트 전용면적 196.84㎡는 지난달 11일 55억원(6층)에 팔렸다. 이는 지난해 8월 같은 면적 종전 최고가인 49억3천만원(13층)보다 5억7천만원 오른 역대 최고가다.

오는 25일 조합설립총회를 여는 압구정2구역(신현대 9·11·12차)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현대9차 전용 111.38㎡는 지난달 6일 30억3천만원(5층)에 매매돼 처음으로 30억원을 넘은 데 이어, 같은 달 말에는 30억5천만원에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설립 총회에서 조합 정관과 임원진 구성 등이 통과되면 이후 구청에 조합설립 인가 신청을 하게 된다.

현지 부동산 업계에선 압구정동 6개 정비구역 가운데 4구역(현대8차, 한양 3·4·6차)이 지난 10일 처음으로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고 집값이 뛰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압구정5구역(한양1·2차)은 이달 내 조합 설립 인가 여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가격이 급등세다. 한양1차 전용 49.98㎡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가격이 18억5천만원을 밑돌았으나 이달 5일 20억원(7층)을 찍었다.

시장 일각에서는 정체했던 압구정동 아파트 재건축 추진 속도와 가격 상승에 불을 댕긴 게 지난해 정부의 6·17 대책이라고 지목한다. 당시 정부는 재건축에 대한 외지인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는 집주인이 분양신청 전까지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조합원 입주권을 준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새 규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 개정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후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시내 재건축 추진 초기 단지들은 비상이 걸렸다. 가능하면 법 시행 전 서둘러 조합 설립 인가를 신청해 2년 실거주 규제를 피해가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어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재건축 정비구역이 지정됐지만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압구정동도 기류가 급변했다.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는 현지에 장기간 거주 중인 고령층이 많은 데다 세대 내부 수리(리모델링)를 마친 중대형 가구도 많아 주민 다수가 재건축 추진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정부 대책 이후 “일단 조합을 설립해 실거주 규제는 피해놓고 봐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추진 구역마다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율이 빠르게 높아졌다는 게 현지 부동산업계의 전언이다.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조합설립 인가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동별 주택 소유자의 2분 1 이상 동의와 전체 주택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토지소유자 4분의 3 포함)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최근 압구정동처럼 조합설립에 앞서 호가가 상승하는 것은 모든 재건축 단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현행법상 조합설립 인가 이후에는 재건축 주택을 매수해도 조합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이른바 ‘현금청산’ 대상자로 바뀐다. 즉 조합설립 인가 직전이 정상적으로 재건축 주택을 사고 팔수 있는 마지막 시점으로, 조합설립 인가 이후엔 매매거래가 사실상 중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압구정동의 경우도 조합설립 인가를 앞두고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자격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합설립 인가 이후 재건축 사업의 향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어 현 시점에서 섣부른 추격 매수는 ‘상투’(고점 매매가격)를 잡을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압구정동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건축에는 관심이 없는 곳으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층고 제한 등 각종 규제가 적용되는 현실에서 재건축 사업이 순항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건축 주택 분양신청이 가능한 조합원 자격에 ‘실거주 2년’ 요건을 부여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으로, 이달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에서 예상했던 법 개정 시점(2020년 12월)보다 몇개월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