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언론사 중과실과 징벌적 손해배상 / 이제우

한겨레 2021. 2. 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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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전면 확대를 위한 입법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의 근절 대책이 강하게 요구되는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분명 가짜뉴스의 근절이 중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이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진짜뉴스'까지 차단이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합리적인 개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한층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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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우ㅣ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조교수·법학박사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전면 확대를 위한 입법 노력이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의 근절 대책이 강하게 요구되는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관련 입법이 적절한지는 물론 적용 대상의 범위를 놓고 ‘언론사를 대상에 포함시켜서 가짜뉴스를 근절하자’는 찬성 입장과 ‘언론사는 제외하여 언론의 자유를 강하게 보장하자’는 반대 입장이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쟁점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의 요건 문제가 있다.

현재 상법을 비롯한 여러 특별법의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의 요건으로 “고의 또는 중과실”을 규정하고 있다. 과연 이런 입법 태도가 타당한가? 원칙적으로 민사 책임은 귀책사유의 유형을 구분하지 않는다. 고의든 과실이든, 과실 중에서도 중과실이든 경과실이든 다른 요건만 다 갖추면 더 묻지 않고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이는 전보적 손해배상의 초점이 피해자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주관적 사정이 어떠하든 실제 손해액만큼 배상하여 피해자를 구제하면 된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초점을 가해자에게 맞춘다. 손해배상의 목적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억지하는 데 있고, 더 나아가 가해자를 징벌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런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 원칙적으로 가해자의 악의 또는 고의가 요구된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예외적으로 중과실도 요건으로 규정되곤 한다. 그러나 명예훼손의 경우만큼은 이러한 예외의 인정이 부적절하다.

명예훼손에서는 고의(또는 악의)와 중과실을 단순히 귀책의 경중이 다른 두 요건으로만 볼 수 없다. 고의(또는 악의)는 사실의 적시를 통해 타인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실추시키고자 하는 가해자의 태도이다. 반면 중과실은 사실의 진위 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음에도 이를 확인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 없이 해당 사실을 적시하는 가해자의 태도이다. 즉, 고의(또는 악의)가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태도라면, 중과실은 사실의 진위 확인에 대한 태도이다.

문제는 사실의 진실성에 대한 확인을 게을리하였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면 권력과 공직 사회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현저히 저해된다는 데 있다. 과도한 손해배상의 가능성만으로도 언론사는 위축되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처럼 언론의 본질적인 기능이 약화되면 국가권력은 부패하게 되며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의 명예와 언론 자유의 보호라는 두 이익을 적절하게 형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릴 만큼 자제력을 잃고 공적 의무의 이행을 포기한 언론사로 국한하여 인정해야 한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언론사도 큰 피해를 야기하지만 이 경우는 현행대로 전보적 손해배상만 인정한 후, 형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의 자유가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기본적 권리는 아니지만 그 제한은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과잉금지 원칙의 위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분명 가짜뉴스의 근절이 중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이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진짜뉴스’까지 차단이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으로서 중과실은 배제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개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한층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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