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30만시간 녹음..남극 고래는 어떻게 우나
20년, 30만 시간 분량 녹음서
멸종위기 고래소리 분리 성과
지금까지 남극 13번 다녀와
소리로 이동경로·개체수 파악
"남의말 엿듣는듯 묘한 느낌"
2006년 처음 빙하를 밟은 그는 극지연구소에서 남극의 해수면·빙하 연구의 외길을 걸었다. 그런 이 본부장이 지난달 꽤 흥미로운 보도자료 하나를 발표했다. 남극 수중에서 20년간 녹음된 30만시간짜리 기록 속에서 남극 대왕고래와 긴수염고래의 소리만을 분리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구의 심연 같은 남극의 물살을 가로질러 지구에서 가장 큰 포유류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은 어떤 걸까. 이 본부장을 최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물속에 마이크를 집어넣으면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원하는 신호만 선별하기 어렵고 또 숙련도에 따라서 소리를 골라내는 작업도 편차가 있죠. 신호와 잡음 속에서 소리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한 사람이 30만시간 동안 소리만 들을 수도 없으니까요."
연구팀은 음향 자료에서 고래 소리만 자동으로 찾아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세종기지·장보고기지는 고래들의 주무대였다. 식별된 자료만 10만건이다. 인공지능(AI) 기술과 만나 고래의 시공간적인 움직임 파악도 가능하다. 출산을 위해 열대 바다까지 5000㎞를 이동하는 고래의 생생한 움직임을 기술력으로 실증한 셈이다.
"남극 소리를 2001년부터 녹음 중이었어요. 해외 국책연구기관과 대학들도 남극 바다의 소리를 녹음하고 있었고요. 똑같은 연구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아 비효율적이었는데, 국제포경협회(IWC)에 남극 지역 고래 연구를 협의해 소리를 공유하기로 했죠."
한국 극지연구소, 호주 남극연구소, 미국 해양대, 프랑스 브리타니대,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대가 그렇게 합심했다. 이들 연구팀이 사용한 음향장비는 어군탐지기와 원리부터 다르다. "어군탐지기는 되돌아오는 소리로 개체를 확인해요. 그건 돌고래가 매우 싫어하는 소리이고 또 수중에서 시끄럽기도 하죠. 국제연구팀이 쓴 수중음향 관측장비는 가만히 켜놓기만 하면 되는 수동형 관측장비입니다. 자연의 소리를 가만히 기록하는 거죠."
고래 울음소리는 어떨까. 남극 대왕고래는 음향의 주파수 모양이 알파벳 'Z' 형태란다.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뚝 떨어지는 음이다.
"휘파람을 불 때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고래의 대화를 엿듣는 기분이에요. 신호를 모으면 고래가 다른 고래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지 알 수 있게 되죠."
고래 소리를 분리한다는 건 단지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는 일만은 아니다. 소리는 고래의 이동 경로와 개체 수를 확인하게 해준다.
"처음 남극에 갔던 건 2006년이었고 굉장히 적막했습니다. 몇십 ㎞ 안에 저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해가 지날수록 강처럼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요. 얼음이 녹아 폭포수가 생긴 것처럼요. 코르크 마개가 빠진 와인병처럼 지구의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남극을 연구하는 그는 매해 그런 것처럼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오가는 자신의 운명이 마치 그리스신화 속 '카산드라' 같다고 말하곤 한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와 남매지간인 카산드라는 목마(木馬)를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예언했지만 이를 무시한 트로이는 결국 멸망한다.
"큰 재난이 온다고 하면 대비할 수 있지만 쉽지 않죠. 빙하 연구도 이와 같아요.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과 과학하는 분들이 더 쉬운 언어로 기후변화라는 재난을 쉽게 제언하고자 해요."
올해 백신 접종으로 팬데믹이 어느 정도 종식되면 그는 내년 이맘때 또 남극에 간다. '운명의 날 빙하'라고 부르는 남극 스웨이츠 빙하를 찾기 위해서다. "때가 지나버렸는지 혹은 복구가 가능한지가 스웨이츠 빙하의 운명에 달려 있거든요. 남극이 일종의 시계인 셈이죠."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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