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람_칼럼 읽는 남자] 여고생 칼럼니스트 / 임인택
[칼람-칼럼 읽는 남자]
임인택ㅣ여론팀장
여론팀 업무를 맡은 지 1년이 됐다. 칼럼 기획관리 외 다른 뉴스를 팔로업 못하자 지인이 “칼럼만 읽는 남자냐”고 비꼰 지도 두달 됐다. 상황이 이럴진대, 내가 관여도 않는 칼럼을 기다리는 일은 거의 없다. 예외가 있긴 하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신채윤 학생이 쓰는 ‘노랑클로버’다. 거듭 마감 관리 때문이 아니다. 그새 그가 새로 건넜을 어떤 강이 궁금하고, 그 강의 굽이나 바닥에서 흐르고 부닥치며 그가 드러냈을 사고와 감성의 새 결이 ‘읽고’ 싶어 나는 기다린다.
신채윤은 100만명 중 2명꼴로 갖는다는 희귀병을 진단받은 2년 전 가을부터 “당연하던 일상들이 물을 손에 한 움큼 쥐었을 때처럼 손쓸 수 없이 빠져나가” 버린, 그래서 “목 놓아 울”고 “목적지가 없는 원망과 … 절망을 토해”내던, 그렇게 “무너진 마음을 몇번이고 다시 쌓”으며 겨우 “초조함과 슬픔, 애써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건너는 올해 18살의 여고생이다.
사실 그의 글에 기반할지언정 지난 2년여를 이처럼 추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날벼락일 듯 진단받던 때도 부러 태연한 척 “채윤이 혈압이 키면 농구선수 하겠다”고 노래 불러주고 한 움큼의 약을 먹을 때 “약쟁이”라며 웃게 해준 세살 터울 언니 이야기가 책 열권은 될 것이고, “네 인생 망했네?” 할퀸 급우 얘기가 책 한권일 테고, 먹어선 안 되기에 입맛 다시며 사놓기만 한 라면만도 탑이 된데다 그러면서 “언젠가 제약 없이 라면을 먹게 되면 그때는 왠지 가득 쌓인 라면을 다 먹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 것 같다. 틈틈이 주변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모으는 중이다. (…) 마음에 드는 맛으로 골라 가져가라고 말할 거다” 작정하는, 과호흡 증상으로 아파할 때 산소캔을 사주겠다던 10살 남동생이 “누나, 나는 사실 누나가 아픈 게 좀 싫었다” “누나가 아파 엄마가 병원에서 자는 거랑 누나가 집에 있을 때 내 친구들이 집에 못 놀러 오는 게 싫었어” 뒤늦은 술회에 “이제라도 (…) 투정을 부려서 다행이다. 너무 일찍 철든 동생을 보는 일은 슬프니까”라고 적는 필자의 지난 2년여를 저렇게 도려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신채윤의 기고는 치료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부정기적이다. 그의 글에 제천간디학교 학생 이담이 그림을 더한다. 그림엔 소품들이 많다. 그 둘의 소품도 좋다. 지극히 지적인 독서조차 “우리 안에 남기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독서를 한 장소와 날의 이미지”(마르셀 프루스트)라면, 기억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느낌이고 그 느낌을 매개한 소소한 사물의 비연속적 정렬일 것이다. (아마도) 인연 없는 둘은 그렇게 만나, 생면부지의 나 같은 독자들과도 만난다. 무기력했던 어떤 학창시절, 무감각하거나 되레 과장된 어떤 시절을 나는 번번이 떠올리다 결국 밑줄이나 긋는다. “나는 병과 함께 살고 있다. ‘병에 걸렸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이 있음을 알아두려는 것이다.”(‘기억할 거야,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웃음’, 1345호)
우리는 저마다의 밑줄 본능을 갖고 있다. 저도 모르게 긋겠다 대기 중인 밑줄의 기력들이 있다. 가령 누군가의 글에서 제것과 유사한 통점(또는 통찰)을 볼 때와 전혀 몰랐던 통점(또는 통찰)을 볼 때도 밑줄은 그어질 법한데, 정반대의 이유로 시작된 그 밑줄은 결국 만나고 만다. 이 세계, 통점-통찰의 지평이 마법처럼 넓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한겨레>는 대중을 상대로 칼럼니스트를 공모 중이다. 다음주 23일 접수가 종료된다. 어떻게 발품을 팔아도 전통 미디어가 닿는, 그 미디어를 유혹하는 칼럼니스트는 비교적 ‘규격화’되어 있었다. 공모라는 아싸리 공정을 달리한 방식으로 칼럼니스트를 더 모셔보려는 까닭이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라는 공모안엔 그 희망이 담겨 있으나, <한겨레>가 이 시대 소명에 충분히 충실한가 회의도 없지 않다.
“나는 쓴 것과 쓰지 못한 것 사이에 있다”는 47년 시인 장석주의 말을 빌려, <한겨레>는 한겨레가 쓴 글과 한겨레가 쓰지 못해 여러분이 쓸 글 사이에 언제나 있고 싶다. 신채윤 칼럼니스트의 글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원을 기다린다. 당신의 밑줄과 당신의 밑줄을 연결하고, 더 많은 밑줄로 둘러싸여, <한겨레>가 생래로 소임이라 생각해오던 일을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고 싶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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