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칼럼] 김종인 위원장은 황교안의 실패를 왜 반복하려 하나

성한용 2021. 2.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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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칼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호영 원내대표, 김 위원장, 이종배 정책위의장. 공동취재사진

정보화 시대의 유권자는 두 얼굴을 가졌다. 첫째, 모바일 검색 덕분에 각 분야 전문가 못지않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둘째, 확증편향이 심해져서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두 가지 특징은 모순인 것 같은데도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

유권자를 토끼에 비유해서 죄송하지만, 정치에서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비법은 본래 없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집토끼인지 산토끼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새로운 종이 출현했다. 새로운 종은 어리석어 보여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무척 영리해서 사냥꾼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찍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신뢰하는 국민이 꽤 많다. 지금 대통령이 홍준표나 안철수였다고 해도 그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 문재인 정부를 손절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020년 4·15 국회의원 총선거 승리를 위해 2019년 광화문 집회에 몰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나치 독일 친위대라고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좌파 영구집권 제도라고 했다. 집토끼가 결집하고 반문재인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해가 바뀌자 상황은 황교안 대표에게 더 유리해진 것 같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증’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것은 1월20일이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 질병을 ‘코비드 19’라고 명명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19’라 했다.

황교안 대표는 2월19일 ‘우한 폐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한 폐렴’이라는 병명을 고집한 것은 문재인 정부를 친중-반미-종북 색깔론으로 공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정부의 마스크 대책을 “국민들 줄 세워 ‘북한식 배급제’까지!!”라고 비판했다. 민심이 문재인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리고 보수 야당에 의석을 왕창 몰아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하면서 역풍이 불었다. 유권자는 국가적 재난을 선거에 이용하려던 보수 야당을 4·15 총선에서 심판했다.

총선 뒤 당 재건에 나선 김종인 위원장은 좀 달랐다.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와 기본소득을 명시했다. 광주에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잘못을 사과했다. 정부 예산안 심사와 의결에 협조했다. 멋져 보였다. 거기까지였다.

당 지지도의 더딘 상승세와 4·7 재보선의 밝지 않은 전망에 초조했던 것일까? 김종인 위원장은 느닷없이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정책과 실무자의 북한 핵발전소 검토 문서를 엮어서 ‘이적행위’라고 했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설 연휴 민심을 전하며 “문재인 정부 손절이 대세”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손절은 손절매를 줄인 말이다. 주가가 내려갈 때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서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하는 기법이다.

문재인 정부를 손절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유권자인 국민이 보고 판단할 일이다. 야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 손절이 대세라고 하는 것은 ‘희망 사항’, 요즘 말로 ‘뇌피셜’에 불과하다.

김종인 위원장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도 공격했다. “설 차례도 세배도 못 하게 막더니 막상 설이 지나자마자 직계가족 모임을 허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5인 이상 식사를 여전히 금지하고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죽이고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맛대로 거리두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방역지침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이나 거리두기 완화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설 연휴에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긴 줄을 서서 한 시간씩 기다리면서 짜증 한번 내지 않는 사람들, 어린이나 노약자를 데리고 온 가족에게 앞으로 가라고 양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감동이었다.

김종인 위원장의 정부 방역지침 비판은 바로 이런 착한 국민에 대한 비난으로 들린다. 황교안 전 대표의 실패를 김종인 위원장이 되풀이하는 이유가 뭘까?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을 찍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도 않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신뢰하는 국민이 꽤 많다. 지금 대통령이 홍준표나 안철수였다고 해도 그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 문재인 정부를 손절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유권자는 정치인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쓸데없이 목소리만 높이면 선거에서 더 불리해질 것이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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