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백기완 선생 조문, 알려지지 않은 장면

노지민 기자 2021. 2. 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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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존중 어디있나" "비정규직 피눈물" 메시지 외면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동정보도 집중되면서 비정규직 메시지는 또다시 밀려나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왔다면 빈 말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았다. 문 대통령의 빈소 방문 직후 대통령과 유족의 대화 내용, 유족이 대통령에게 건넨 흰 손수건과 고인의 저서 등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여기서 가려진 장면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보인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메시지다. 장례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인 김소연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비정규직이제그만 김수억 공동대표와 유흥희 집행위원장, 박성호 한진중공업 전 열사추모사업회 대표는 문 대통령이 빈소에 머문 10여분간 추모리본에 이 글귀를 새겨 들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몇 장의 사진으로 SNS 등에 공유됐다. 추모리본을 들어보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문 대통령이 지나치는 상황이 현장에 있었던 노순택 작가의 카메라에 담겼다. 장례위원회는 사진 중 일부를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잠깐 멈춰 종이에 쓰인 글귀를 보고,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의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빈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추모리본에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은 어디에 있습니까” 글귀를 적어 들어보이고 있다. ⓒ 노순택

그러나 대다수 언론보도에선 이 장면을 찾아볼 수 없거나,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에게 공유한 '풀(pool) 기사'에도 해당 내용은 없었다. 보통 대통령의 공개일정은 일부 취재기자가 대표로 동행취재한 뒤 해당 내용을 전체 출입기자들에게 공유한다. 이날 배포자료에 문 대통령이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에 도착한 9시17분부터 유족에게 목례로 조문을 마친 9시27분까지의 상황이 기록됐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은 담기지 않았다.

추모 리본을 들었던 김수억 공동대표는 미디어오늘에 “우리 이야기가 언론엔 잘 나오지 않더라. 어떤 마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 있었는지 전해주면 좋겠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아침에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 소식을 듣고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백기완 선생이 살아생전 마지막 10년을 계셨던 곳이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 투쟁의 현장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말하고 4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이 더 늘거나, 일하다 계속 죽거나 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을 보고 싶었다, '대통령이 약속한 노동존중은 어디에 있나'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장례식장이었기 때문에 묵묵히 리본을 들고 서 있었는데 대통령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빈소를 나와서도 그냥 지나가길래 '문재인 대통령님, 비정규직의 피눈물이 안 보이십니까. 노동존중 어디로 갔습니까' 불렀더니 잠깐 멈추더라. 쳐다보고,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들고 있는 추모글을 봤다. '노동존중 어디 있나, 비정규직 피눈물 보이시나' 다시 물었지만 그 이야기만 듣고 지나쳐서 갔다”고 전했다. 그는 문 대통령 취임 1년이었던 2018년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을 꾸려 대화를 요구했지만 4년 동안 응답이 없었다며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불법파견 저지르고 상식과 정의에 어긋난 재벌을 처벌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만난 사람들은 오히려 재벌들이었다”고 주장했다.

▲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빈소 앞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추모리본에 글귀를 적어 들어보이고 있다. ⓒ 노순택

문 대통령이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후배들에게 맡기고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안타깝다” 지적했다. 김 대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절하게 묻는 질문에 단 한번이라도, 빈말이라도 '노력하겠습니다'든 뭐든 했어야 하지 않나. 일언반구 없이 지나치는 대통령을 보며 확인한 건 이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입장이고 태도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노동해방 백기완' 글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말 않는 문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며 백 선생이 남긴 '노나메기 세상' 비정규 노동자들이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다녀간 17일 오후는 백기완 선생 추모 행진이 예정돼있다. 역시 추모리본을 들었던 김소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은 “최소한 조문을 왔다면 백기완 선생의 뜻이 어떤 건지 생각을 해야 한다. 한마디라도 언급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행진은) 비정규직과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선생님 뜻을 기리는 행진이고, 유가족도 오신다. 선생께서 건강하거나 살아계셨다면 먼저 찾을 곳은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선생님 영정을 모시고 그 뜻을 따르겠다, 열심히 싸우겠다는 마음으로 행진하는 날이다. 그런 날 대통령이 온 것”이라 꼬집었다.

▲ 17일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빈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 메시지를 지나치고 있다. ⓒ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

김 위원장은 “그간 노동자들이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 어떻게 할 거냐' 여러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현실에선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다. 특히 대통령은 고용안정을 얘기했다. 코로나 상황에 해고노동자 없게 하겠다 했고, '노동존중'을 이야기했지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만들었다는 이유로 코로나 핑계로 해고되고 있다. 여전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무기계약 전환 등의 꼼수에 놓이고, 해고되고, 여전히 최저임금이고, 차별을 받는 현실”이라며 “그런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해결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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