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3%로 정국 뒤흔들었다.. 이탈리아 제2의 '마키아벨리'

이철민 선임기자 2021. 2. 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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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렌치 전 총리..역대 최연소 총리 경력에도, 별명은 '파괴자'

이탈리아는 지난 한 달간 극심한 정국 혼란을 겪었다. 1월 13일 연정(聯政)이 붕괴 위기에 빠졌고, 결국 주세페 콘테 당시 총리가 26일 사임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마리오 드라기 전(前)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새 총리에 취임했다. 하지만 이 사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이탈리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제5당쯤 되는 ‘이탈리아 비바’당 대표이자 전(前)총리인 올해 46세의 마테오 렌치였다. 그의 지지율은 3%에 불과하다.

마테오 렌치는 500년 전 마키아벨리가 정치철학자로서 '군주론'을 썼던 피렌체에서 5년간 시장을 역임했다. 이탈리아 언론은 렌치가 지난 한달간 보여준 정치술은 마키아벨리를 당혹하게 할 정도"라고 평한다. 렌치도 "마키아벨리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렌치는 이탈리아가 유럽 최악인 8만2000여 명의 코로나 희생자를 내고 이제 대규모 백신 접종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자신이 이끄는 ‘이탈리아 비바’당 소속 장관 2명을 내각에서 빼 연정 붕괴를 초래했다. 하지만, 한달 간의 혼돈 끝에 ECB 총재 시절 2011년 유로화 위기를 극복해 ‘유로의 구세주’로 불리는 유럽연합(EU)의 거물인 드라기를 이탈리아 정치로 끌어들여 이탈리아 정부의 신인도(信認度)를 단숨에 끌어올린 주역도 바로 렌치였다. 그는 이탈리아 언론에 “사람들은 콘테 내각의 위기를 얘기했지만, 나는 마키아벨리에게서 영감을 받아 국가에 ‘옳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렌치가 지난 한 달간 보여준 정치술은 “마키아벨리도 당혹하게 할 정도”였다고 평했다.

◇이탈리아 최연소 총리 경력에도 별명은 ‘파괴자’

렌치의 별명은 이탈리아어로 파괴자·파쇄업자·폐차업자 등을 뜻하는 ‘로타마토레(rottamatore)’다. 렌치는 지난달 13일 갑자기 콘테 총리의 무능함을 비난하며, 자당(自黨) 각료 2명을 내각에서 뺐다. 그러나 중평(衆評)은 “3% 밖에 안 되는 지지율을 갖고 국가적 위기를 악용해 결국 소속당 각료 수를 더 늘이려는 얄팍한 술책을 쓴다”는 것이었다. 정국 재앙을 초래한 그에겐 온갖 욕설이 따랐다. 하지만 11일 파이낸셜 타임스( FT) 인터뷰에서 렌치는 “처음부터 콘테를 드라기로 교체하는 것이 목표”였고, “지지율이 워낙 바닥이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이탈리아 총리 관저에서 퇴임하는 주세페 콘테 총리(왼쪽)가 마리오 드라기 새 총리에게 작은 종을 건네주고 있다. /EPA 연합뉴스

렌치는 마키아벨리가 500년 전 정치철학자로 활약하며 ‘군주론’을 쓴 피렌체에서 5년(2009~2014)간 시장을 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있었던 피렌체 궁정에서 5년간 일한 게 좀 도움이 됐다”고 FT에 말하기도 했다. ‘로타마토레’라는 별명도 피렌체 시장 시절, 소속당인 민주당 지도부를 수시로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얻었다.

◇마키아벨리도 당혹하게 할 정치술

이탈리아에서 총리를 선택해 정부 구성을 위임하는 권한은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마타렐라가 드라기를 불러 내각 구성을 당부하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은 렌치였다. 저명한 경제학자 출신인 드라기는 유로화를 안정화한 ‘유로의 구세주’로 불린다. 2차 대전 이후 벌써 67번째 내각이 들어설 정도로 불안정한 이탈리아 정국(政局)에 드라기 같은 거인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EU에서 이탈리아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신뢰도를 크게 높인다. 렌치는 “팬데믹 상황에선 최고의 플레이어를 영입해야 하며, 마리오 드라기는 최고다.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이제 이탈리아가 돌아왔다”고 FT에 말했다.

렌치는 2014년 2월 39세에 이탈리아 역대 최연소 총리(중도좌파 민주당)가 됐다. 그러나 2016년 12월 개헌 국민투표를 밀어붙였다가 졌고 총리직에서도 물러났다. 2018년 총선에서 그가 속한 민주당은 제3당으로 밀려났고, 이탈리아엔 제1당인 반(反)EU·민족주의 성향의 ‘동맹(League)’과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제2당 ‘5성운동(5MS)’ 주도의 연정이 들어섰다. 렌치는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2019년 ‘동맹’측이 지지도가 급증하자 조기 총선을 실시해 “완전한 권력”을 행사하려고 연정에서 발을 빼면서 렌치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렌치는 애초 연정 참여를 거부했던 의사를 뒤집어, 5성운동과 연정을 꾸렸다. 그리고 렌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민주당을 쪼개고 ‘이탈리아 비바’당을 창설했다. ‘이탈리아 비바’ 당은 콘테 내각을 지지할 의석 수는 확보했지만, 여론조사에선 계속 위축됐다. 그리고 콘테 총리가 작년에 1차 코로나 위기를 견디며 지지율이 치솟아 렌치가 노리는 중도 성향 표까지 잠식하자, 렌치는 1월13일 아무도 생각 못했던 ‘연정 포기’ 결정을 내렸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애초 렌치가 빠져나가도 다른 연정 파트너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않자 “훨씬 더 많은 장관직”을 렌치에게 약속했지만, 렌치는 확답 없이 협상을 이어가며 ‘희망 고문’을 이어갔다. 드라기 영입을 확정하기까지 시간을 벌 요량이었다. 심지어 콘테 총리에 대한 상원의 불신임 투표에서도 ‘이탈리아 비바’ 의원들은 기권을 했다.

◇반(反)유럽·포퓰리즘 기세 한동안 꺾일 듯

13일 드라기 내각이 출범하면서, 이탈리아 정국 분위기는 이미 바뀌고 있다. 반(反)EU 정서가 강한 ‘동맹’당에서도 밀라노를 비롯한 북부의 기업인들은 드라기 내각을 반긴다. 5년전만 해도 “유로화 거부(no more euro)” 티셔츠를 입고 전국을 돌았던 동맹당 대표 마테오 살비니는 드라기 정부와 EU 지지를 약속하며 연정에 참여했다. 포퓰리스트 정당인 5성 운동도 드라기 내각에 참여했지만, 반대파와의 심각한 내분을 겪었다.

◇여전히 많은 이에게 렌치는 ‘개 자식’

그러나 렌치가 드라기 내각에서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없다. 오히려 2석이었던 ‘이탈리아 비바’의 장관직은 새 내각에서 1명으로 줄었다. 그에게 ‘드라기 영입’ 건으로 감사하는 이도 드물다.

'이탈리아 비바' 당 대표인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5일 마리오 드라기 당시 총리 내정자와 새 내각 구성 방안을 협의한 뒤에 돌아가고 있다. 드라기는 주요 정당 대표들과 내각 구성안을 논의했다. /AFP 연합뉴스

그는 FT에 “한달 전에 ‘개 자식(SOB)’이라고 욕하던 이 중에 지금은 ‘그 용기는 인정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에게 나는 개 자식”이라고 시인했다. 그는 바닥까지 내려간 지지율 덕분에, 해야 할 일을 용기 있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파괴자’ 렌치의 진의(眞意)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도 언젠가 다음 번에 자신에게 보다 호의적인 정치적 뒤바람이 불기까지 일단 시간을 번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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