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잔소리? 잔소리 하지 않아도 잘 키울 수 있어요

칼럼니스트 이수경 2021. 2. 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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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으로 키우는 부모, 권리로 자라는 아이] 사랑의 잔소리에서 벗어나세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 연휴가 나흘이나 계속됐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금지되면서 가족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아쉬운 명절이었다.

우리 가족은 친척들이 모두 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 명절이 되면 우리끼리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난 가끔 더 어린 시절의 명절이나 제삿날이 종종 떠오른다. 당시엔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생소한 친척들이 큰 집으로 모였다. 우리가 도착하면 한 걸음에 달려 나온 어른들은 마치 등이 터져라 두들기지 않으면 반갑지 않을 새라 두들기며 끌어안았다. 그러다 어른들이 함께 데리고 온 자녀들을 소개시키면 "야가 그때 걔인가? 어느새 이렇게 컸어? 내가 네 6촌 큰 형님이다. 기억이 나니?"라고 물으며 아이들 등 역시 터져라 두들기며 안아주셨다.

친척들이 다 모이면 서열별로 앉아 세배나 절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이때부터 덕담으로 포장된 어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곤 했다. "아기는? 결혼한 지 몇 년째인데 아직 애가 없어? 뭐가 문제 있는 거야?", "결혼은 했어? 뭐가 부족해서 결혼을 여태 못했어?", "올해는 취직 해야지? 너희 부모가 네 눈치 보느라 맘 편히 이야기나 하겠어? 나나 되니까 너희 위해서 입바른 소리 해주는 거다.", "넌 공부는 좀 하냐? 반에서 몇 등정도 하는데? 요즘 애들은 아쉬운 게 없어서 공부할 생각들도 안하는 거 같아."

어른들의 덕담은 우리에겐 곧 잔소리였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잔소리야말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와 통계로도 밝혀졌다. ⓒ베이비뉴스

잔소리,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거나 또는 그런 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내용은 쓸모없거나 필요 없는 게 아닌데 사전적 의미가 그렇게 쓰인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의 주제가 쓸데없다기보다는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고, 또 필요로 하지 않는 말이라는 게 아닐까? 먼저 본이 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미리 준비한 정확한 정보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본인의 조바심이나 성에 차지 않아서 그저 소리로만 모든 걸 제공하는 방식은 결국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내 경우는 엄마보다 아빠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직장에 다닌 아빠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도 같다. '동생한테 잘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부터 '일찍 다녀라', '방 정리 좀 잘해라'까지 수많은 잔소리의 중심에는 아빠가 있었다.

솔직히 아빠의 잔소리는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삶은 내가 사랑하는 이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의 모습을 본받아 바뀌거나, 아니면 직접 경험을 통해 깨우치면서 변화했던 것 같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잔소리보다는 오히려 좋은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변화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자기만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내가 편하기 위한 합리화일 뿐이다. 우리의 부모 역시 그들의 부모로부터 잔소리를 들었고, 그들은 자녀인 우리에게 잔소리를 했으며, 우리 역시 우리의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마치 전통과 예절을 계승 하듯 잘못된 양육 방법을 아무 생각 없이 세습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잔소리야말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와 통계로도 밝혀졌다. 그리고 자녀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다양한 양육법들 역시 많이 나와 있다. 나의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자녀에게 의견을 존중하면서 아이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지지자가 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기반한 잔소리라는 잘못된 양육 방식에서 벗어나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 약 120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개발 NG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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