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음 녹인 '노숙인과 신사' 한 컷.. "큰 반응,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죠"
백소아 한겨레 사진뉴스팀 기자의 사진기사를 아마도 당신은 봤을 것이다. 소낙눈 쏟아지던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자신의 점퍼·장갑을 벗어 건네던 한 시민의 사진. ‘너무 추운데 커피 한잔 사달라’는 부탁에 선행을 베풀고 눈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린 어떤 이의 모습. 그 찰나의 순간, 백 기자는 거기 있었다. 그렇게 지금은 녹아버린 그날 눈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일이 자취를 남겼다. 녹은 건 꽁꽁 얼었던 우리 마음 뿐이었다.
기사(<[포토] “커피 한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장갑까지 건넨 시민>)가 처음 나간 지난달 18일 오후부터 26일까지 페이스북에서 공유만 약 1만4000회. 반응은 뜨거웠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재판 등 굵직한 사건을 제쳐두고 한겨레는 신문 1면에 이 사진을 실었다. “‘내가 일한 지 꽤 됐으니 감은 있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에세이를 쓰면 좋겠다 했거든요. 눈 스케치 올렸다고 보고하고 곧장 서울고등법원에 취재를 갔는데 회사에서 ‘원본 보내고 러프하게라도 스토리도 보내라’고 하는 거예요. ‘아, 바쁜데…’ 했어요.(웃음) 후배가 현장서 도와주고, 데스크들이 안에서 디벨롭 해줘서 수월히 마감을 했습니다. 반응이 너무 커서 전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신사는 누구였을까. 며칠 만에 백 기자는 그 신사와 연락이 닿았다. 취재후기를 적은 토요판 기사(<서울역 ‘노숙인과 신사’ 어떻게 촬영했냐면요>)를 온라인에 업로드하자 “사진 주인공의 친척의 지인”이 연락을 해온 것. “처음엔 전화로 익명 인터뷰 허락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대면을 해야 더블체크가 되니까요. 다시 전화를 드려 ‘5분이라도 뵀으면 좋겠다’ 했는데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완강히 말씀하시더라고요. 못 찾았을 때도 너무 큰 피해를 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엄청 반성했어요. 후속보도도 안하기로 했고요. 본인은 40대 후반 소시민이라고 하시는데 따뜻한 분이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백 기자는 2012년 아시아경제에서 일을 시작했다. 상도 수차례 받았다. 2013년 12월엔 노인문제를 다룬 ‘그 섬, 파고다’ 기획으로, 2015년엔 ‘위안부 보고서 55 할미꽃 소녀들’로 상을 받았다. 가장 잘 알려진 경우는 2016년 2월 한국보도사진전 인물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5분 지각생 경제부총리’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후 내내 회의시간에 5분씩 늦는 모습을 6개월간 카메라에 담아낸 보도는 이후 회의장에서 시계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2017년 한겨레 이직 뒤엔 사법농단 의혹 이후 KTX 해고 승무원들을 취재한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로 수상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찍고 싶은 사진이 좀 달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예전엔 보는 순간 ‘우와!’하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면 지금은 “따뜻한 시선을 갖고 따뜻한 사진을 찍고 싶다.” 지난해 4월1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코로나19로 이탈리아 밀라노 교민들이 전세기를 타고 귀국했을 당시 안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서로의 머리 위로 하트만 그리던 외할머니와 “할머니, 잘 갔다올게!”라며 씩씩하게 격려장소로 떠난 손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2020 마음 한 장] 코로나도 막지 못한 100m 손자 사랑>)이 그런 사진일지 모른다. 아니면 2018년 연재코너 ‘사부작사부작’에서 빡세게 봄맞이 세척 중인 세종대왕상(像)이 “살살 하라 했거늘!”이라며 버럭하는 사진일 수도 있다. 뭔지 설명은 못해도 ‘따뜻한 사진’은 보면 누구나 안다. 이미 우린 그가 전한 한 순간을 모두 공유한 터다.
10년차 기자는 스스로를 박하게 평가한다. 초년 시절보다 상을 적게 받는 자신에게 “그때 한창 많이 받고 뜸했었죠. 이제 전 끝났어요.(웃음)”라고 막말(?)을 한다. 자신은 “나대는 캐릭터”고 “단점 중 하나가 감정이입을 가끔 심하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이라 자평한다. 이번 사진도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연은 태도로 인해 필연이 되는 사건이다. 그는 딱 일주일 전쯤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센터 직원들을 동행 취재했는데 서울역에 자주 갔음에도 처음 본 모습이 많았다고, 그래서 ‘난 추위 취재할 때 왜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지’ 반성했다고 말한다. 얼쩡거리던 우연이 쌓이고 쌓여 그날 찍게 된 거 같다는 말. 달라진 건 명백히 어떤 역량이나 태도가 아니라 지향일 게다. 마치 그의 바이라인 이메일이 ‘날카로운’(sharp2046)에서 ‘감사하다’(thanks)고 변한 것처럼.
항상 거기 있다는 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소리치고, 부르짖고, 악다구니를 써야만 간신히 목소리가 들릴 사람들을 바라보고 찍고, 그럼으로써만 곁을 지킬 수 있는 사진기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마치고 백 기자는 다시 현장으로 나갔다. 사진은 모르지만 누군가의 지향과 태도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안다.
“엄청 많이 움직여서 다양한 앵글을 찍는 사진기자가 있고 현장을 꿰뚫는 기자들이 있어요, 여유로운데 결과물을 보면 ‘이건 뭐지?’ 싶은. 전 그런 시각적인 센스가 없고 무조건 전자예요, 아등바등해서 A- 받는 애. 대신 강점이 근면성실이라 ‘남들이 찍지 않고 보지 않는 걸 하나씩 찍자’ 정한 룰이 있었는데…요즘엔 안 지켜요. 선배들한테도 빠졌다고 혼나고요.(웃음) 좀 지쳤나, 해이해졌나 싶고요. 근데 그게 강점이었으면 좋겠어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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