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②"방사능 실태조사 해달라" vs "못하겠다" 법원의 판단은?
"춘천 지역 건축물에 쓰인 골재에서 다른 지역보다 방사선 수치가 높게 측정돼서 불안해요. 이게 진짜 정확한 건지, 그렇다면 혹시 이 골재들을 규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확인해주세요."
이러한 요청을 거부당한 뒤 시민들은 원안위를 상대로 2020년 3월 소송을 냈습니다.
※이전 이야기
▶[취재썰] ① 우리동네 방사능, 시민들이 알아서 감시하라구요?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2569
결과는 시민들의 압승이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원안위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습니다.
1) 일반 시민들은 '조사 신청 자격' 없다?
원안위는 소송 초반부터 원고인 춘천 시민들이 지역 방사능 문제에 대한 조사를 신청할 권한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생활방사선안전관리법에 그런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조사 신청의 타당성, 적절성을 논하기 전에 조사를 신청할 권한부터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은 판단할 필요도 없이 법원이 각하해달라고 했습니다.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생활방사선법이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생활주변방사선으로 건강과 환경이 위협받거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든 생활방사선 조사를 신청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춘천에서 해당 골재 등이 건물에 사용돼서 방사선 피폭될 우려가 있는 국민의 경우 누구든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 시민들이 원안위에 조사를 요청하는 대상과 내용도 충분히 구체적이라고도 했습니다.
2) 골재는 '원료물질 아니다'?
핵심 쟁점이 되었던 골재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법원은 시민들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원안위가 골재에 대해 '섞어서 쓰는 건축자재라서 정확하게 수치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점도 비판했습니다. 단지 평가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는 이유로 법에 명시된 규정을 충족시키는데도 조사를 못 하겠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법원은 원안위의 주장에 대해 "어떤 물질이 들어간 제품이 인체에 해롭다는 점이 밝혀지고 나서야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방사선 관리를 하지 못하게 하고 이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하게 하는 해석으로 타당하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법에 있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시민들의 비판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나아가 생활방사능법은 원안위에게 포괄적인 조사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춘천 시민들에게 골재가 원료물질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봤습니다. 만약 원료물질임을 시민들이 입증할 수 있다면, 골재는 원안위가 더 조사할 필요성도 없이 곧바로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니까요.
이 때문에 법원은 원료물질인지 여부 자체를 점검할 필요조차 없다는 원안위의 주장을 부적절하다고 봤습니다.
원안위는 1심 판결 검토 끝에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 등떠밀린 원안위, 이번에는 다를까
법원 판결이 나온 지 세 달이 다 되도록 원안위는 조사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안위는 유례 없는 골재에 대한 조사이기 때문에 준비 작업에 시간이 많이 든다고 설명합니다. 조사 실무를 맡게 될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조사 방식과 시점에 대한 세부안을 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춘천시청 등 지자체들은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해당 골재장에 문제가 있다고 확인되기라도 한다면, 가까운 골재장들을 폐쇄하고 먼 골재장에서 골재를 조달해오면서 건축비용이 상승하는 문제부터 내다보입니다. 또 이미 문제의 골재들로 지어진 건축물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골칫거리입니다.
춘천시 관계자는 "골재 방사선 조사 문제는 큰 사회적 혼란을 부를 수 있어 원안위 결론 없이 지자체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다. 혹시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방사능 도시로 낙인찍힌 뒤의 경제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당장에 수많은 문제점들이 전망되는만큼 지자체 차원에서도 하루빨리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꼼꼼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수년간의 시민들 호소를 외면해온 원안위는 소송을 당하고서야 등떠밀려 조사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라도 원안위는 주민들이 시달려온 공포와 불안에 대해 투명하고 정확한 분석으로 응답하길 기대합니다.
춘천 시민들의 의혹 제기가 만약 비과학적이고 부정확한 것이었다면, 의혹을 바로잡기 위해 상세히 설명해 안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원안위의 의무일 것입니다.
● 골재도 '라돈 공포' 석재처럼 관리될 수 있을까
1군 발암물질인 라돈을 뿜어내는 석재도 한 때는 당국의 관리망 밖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2018년 10월 아파트 마감재로 이용되는 대리석 등 석자재의 위험성이 언론을 통해 조명됐습니다. 이후 실내 라돈 농도 기준 규제와 관리를 위한 법이 생겨나 지난해 6월부터 적용됐습니다.
원안위·국토부 등이 함께 펴낸 〈건축자재 라돈 저감·관리 지침서〉에도 "대부분 해외 문헌 자료에 따르면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라돈 만을 관리하기보다 방사선 전반에 대한 관리를 권고하고 있다"고 언급됩니다.
건축물 자재로서 우리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골재도 '방사성 물질' 관리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국토부 관계자는 특정 골재장의 골재 공급처가 어디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민간 골재 채취 업체에서 나온 골재가 어디에 어떻게 공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데, 아직 안 되어 있다"는 겁니다.
골재는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는지에 따라 기반암의 영향으로 방사능 함량이 다 다릅니다. 혹시 천연방사성물질이 많이 측정되는 곳에서 골재가 생산되고 있는 게 아닌지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침 골재를 방사성 물질 관리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 논의가 뜨겁습니다. 골재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도 석재처럼 관리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원안위와 별개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전국 기반암의 자연방사성 물질 유해평가를 위해 조사에 착수합니다. 올해 서울과 강원도 일부 지역을 시작으로 5년간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집니다. 국내 기반암을 조사해 인체에 유해할 수 있는 자연방사성 물질 함유량을 파악하고 분포도를 그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질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춘천시민들의 의혹 제기와 별개의 조사지만 해당 의혹은 충분히 규명해볼 만한 내용"이라며 "혹시 기반암 문제가 아니면 해당 골재장에서 방사능 이슈가 있는 해외 수입 골재를 섞어쓰는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로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원안위가 그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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