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지기 하루 전, 16개월 영아 정인이는 모든 걸 포기한 모습이었다

강재구 2021. 2. 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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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입양 뒤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마다 상처와 멍 등이 있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날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 ㄱ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해 3월 정인이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며 "하지만 얼굴, 이마, 귀, 등에 흉터나 멍이 든 채로 등원했다. 2주나 1주반 정도마다 상처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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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비극'][영상] 정인이 양부모 두번째 공판
시민 80여명 "양부모 엄벌" 촉구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가 입양 뒤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마다 상처와 멍 등이 있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은 두 달 사이에 기아처럼 말랐다는 진술도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3부(재판장 신혁재는) 17일 오전 10시부터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모 장아무개씨와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양부 안아무개씨의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과 홀트 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 어린이집 담임교사가 순서대로 증인으로 출석했다.

어린이집 원장 ㄱ씨는 오전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난해 3월2일 정인이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쾌활하고 밝은 아이였다”며 “하지만 얼굴, 이마, 귀, 등에 흉터나 멍이 든 채로 등원했다. 2주나 1주반 정도마다 상처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ㄱ씨가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장씨에게 물었지만 양모 장씨는 ‘잘 모르겠다’거나 ‘부딪혔다’, ‘떨어졌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ㄱ씨는 정인이 양부모와 대면을 원하지 않아 피고인이 볼 수 없도록 별도의 증인신문실에서 음성으로 증언했다.

ㄱ씨는 지난해 5월25일 첫 신고 당시의 상황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ㄱ씨는 “담임교사가 불러 정인이를 확인해보니 배에는 상처가 있었고, 다리에 멍이 들었다. 항상 얼굴이나 입 부분에 상처가 나다가 아래에 상처가 나서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모는 “정인이 아빠가 베이비마사지를 해줘서 그렇다”고 ㄱ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ㄱ씨는 “다른 아이들이랑 너무 비교되는 상처였고 더 이상은 (학대) 의심만 할 게 아니라 신고를 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 신고를 했다”고 답했다. 울먹이며 증언을 이어가던 ㄱ씨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오후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담임교사 ㄴ씨도 정인이의 학대 정황에 대한 증언을 이어갔다. ㄴ씨는 정인이의 몸에서 멍을 발견할 때 마다 사진을 찍어 기록을 했다. ㄴ씨는 지난해 3월24일을 시작으로 첫 학대 신고가 있었던 지난해5월25일까지 10여일 가량 정인이 몸에 생긴 멍을 사진으로 찍어뒀다. ㄴ씨는 “양모에게 상처를 물으면 보통 ‘모르겠다’, ‘괜찮을거다’는 등 안일하게 대답했다”며 “일반적인 학부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ㄴ씨는 또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 장씨가 나에게 ‘정인이는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그런지 모성애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정인이 사건’ 양부모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열린 17일 오전 시민들이 외국에서 보내온 진정서를 들고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정인이는 지난해 7월말부터 두 달가량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았다. 여름 휴가 이후 정인이의 언니는 지난해 8월5일부터 정상 등원을 했다. 장씨는 ㄱ씨에게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정인이를 등원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ㄱ씨는 장씨에게 ‘결석을 하면 구청에 의무적으로 보고를 해야한다’, ‘출석 인정이 안 되면 어린이집 비용을 자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정인이의 출석을 유도했다. ㄱ씨는 정인이의 출석을 유도한 이유에 대해 “정인이 언니가 등원할 때 정인이는 바깥에 있거나 유모차에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아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다”고 증언했다.

ㄱ씨는 지난해 9월23일 정인이가 두 달만에 어린이집에 등원했을 때 “정인이를 안았을 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겨드랑이 쪽을 만져봤는데 가죽이 늘어나듯 살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ㄱ씨는 또 “기아처럼 너무 야위었고 아이를 세웠을 때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많이 변한 모습을 보고 다들 힘들어했다”고 울먹였다.

오후 재판에 나온 홀트 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 ㄷ씨는 지난해 9월 장씨가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걸어와 “정인이가 일주일째 밥을 먹지 않는다. 아무리 불쌍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사망 전날인 지난해 10월12일 정인이는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ㄱ씨는 “정인이는 그날 모든 걸 포기한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과자를 줘도 입에 넣지 않았다”며 “머리에는 멍이 든 상처가 있었고, 몸은 많이 말랐는데 배만 볼록 나왔다”고 말했다. 이튿날 정인이는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날 재판 시작 전 아침 8시부터 서울남부지법 법원 정문 앞에는 정인이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시민 80여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살인 공범 양부 즉시 구속하라’, ‘정인이를 기억해주세요’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새벽부터 법원 앞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이날 오전 7시께 법원을 찾은 김아무개씨(43)씨는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 시기의 아이가 어떤지 알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시위를 하고 관심을 표출하면 엄벌이 되지 않을까 해서 법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남부지법 정문 근처에는 정인이를 추모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근조 화환 100여개가 설치됐다.

이날 오후 5시께 공판이 끝난 뒤 양부 안씨가 법원 건물을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하자 시민 수십명이 몰려 안씨의 차량을 막아섰다. 일부 시민들은 차량 앞부분을 손으로 내려치거나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시민들은 양부의 차량이 빠져나간 뒤 양모가 탄 호송차량을 막아섰다. 일부 시민들은 차도에 눕거나 앉아 호송차량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100여명가량의 경찰이 투입돼 통로를 막는 시민들을 제지했지만 호송차는 40여분 가량 법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법원 옆문으로 나가려던 호송차량은 경로를 변경해 오후 6시께 법원 정문으로 빠져나갔다.

‘정인이 사건’ 양부모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열린 17일 시민들이 정인이 양모가 탄 호송차량을 막아서고 있다. 강재구 기자.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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