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열쇠만 실물로 남아.. 오래된 차도 스마트폰으로 열어" [모빌리티 열전]

조병욱 2021. 2. 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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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욱 기자의 '모빌리티 열전'①, '디지털 차키' 만드는 송영욱 튠잇 대표
자체 개발 모듈 장착해 구형 차량도 커넥티드 카로
열쇠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문 열어
현대차 연구원 거쳐 사내벤처 프로그램에 도전
"사람 위한 신기술 고민 끝에 창업 결심
아이디어만 갖고 시작했다면 리스크 컸을 것"
송영욱 튠잇 대표가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디지털 차키’ 아차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다 보니 이게 무엇인지 설명부터 해야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지난 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에서 만난 송영욱(44) 튠잇 대표는 자신들이 만드는 ‘디지털 자동차 열쇠’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고 했다. 튠잇은 자체 개발한 모듈을 차에 장착해 오래된 차도 스마트폰으로 문을 열고 잠글 수 있는 커넥티드 카로 바꿔주는 ‘아차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자동차 열쇠가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차 문을 열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이를 공유할 수도 있어 가족 간에 차를 공유하거나 회사의 업무용 차량으로 활용할 때도 유용해 최근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송 대표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RV차량의 패키지를 만드는 연구원이었다. 패키지 업무는 운전자를 위한 최적의 공간 설계를 담당하는 직무다. 그는 현대차 재직 당시 5년간 80여개의 아이템을 제안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현실에 구현됐다. 송 대표는 “자동차는 2만∼3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된다. 디자이너에게만 차를 맡기면 아름답지만 사람이 탈 수 없는 우주선 같은 결과물이 나온다”며 “일을 하면서 사람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졌고,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신기술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 가운데 ‘디지털 차키’가 있었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송 대표는 2014년 현대차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H스타트업)에 도전했다. 2006년 현대차 입사 이후 8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안정된 대기업 직장인의 삶을 포기하고 창업에 뛰어들 당시 두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역사는 움직이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며 “아이템에 대한 확신이 강했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우리의 생각이 세상에서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런 그에게 사내 벤처프로그램은 든든한 버팀목 같은 역할을 했다.

송 대표는 “아이디어만 갖고 바로 창업을 했다면 리스크가 컸을 것”이라며 “사내벤처 제도를 통해 비즈니스와 익숙해질 시간이 축적됐다”고 했다. 이어 “사내벤처를 하기 전까지는 경제나 비즈니스에는 관심이 없었다”며 “연구소에서 연구개발과 제품화에만 집중했는데 막상 창업하고 나니 좀 더 일찍 비즈니스에 눈을 돌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했다. 송 대표는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기계항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한 정통 공대생이다.

여느 스타트업의 어려움을 송 대표도 피해가지는 못했다.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최근에는 좋은 입지의 사무실이나, 대형 포털이나 쇼핑몰, 게임회사들로 사람이 몰린다”고 했다. 마침 이날 오전 신입사원 면접을 보고 온 그는 “숨은 인재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오늘은 한 명을 찾은 것 같다”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2019년 3월 사내벤처에서 독립해 법인을 설립한 이후 단기계약직 1명 외에 퇴사자가 없다는 것이 튠잇의 자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회사의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내부 문화나 기존 인력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도 중요한 요소”라며 “우리가 그 문화를 잘 가꿔가려고 하고,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튠잇의 대표 서비스 ‘아차키’는 차 열쇠를 자주 잃어버려 구매를 결정했다는 개인 고객부터 전기차 택시회사, 자동차 공유업체, 배터리 기업의 사내복지용 공유차, 기업의 법인차량 등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다. 그는 “전기 택시의 경우 새벽 3∼4시에 차량 교대가 이뤄지는데 차고지가 아닌 충전소에서 하다 보니 사람이 꼭 만나야 한다”며 “이때 아차키를 쓰면 서로 만나지 않고 차 열쇠를 공유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튠잇의 기술력은 스타트업을 넘어섰다. 현대차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베뉴에 탑재된 커스터마이징 상품에 튠잇의 기술력이 들어갔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폰 IoT 패키지’는 스마트폰 앱으로 차의 의자 자세, 사이드 미러, 열선장치등 편의사양을 조정하고 기록할 수 있다. 이 패키지를 다른 차종으로 확대해 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택배 차량에도 ‘디지털 차키’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아차키 앱에서 지원하는 세이프도어락 기능을 쓰면, 스마트폰을 든 운전자가 차에서 멀어지면 자동으로 차 문이 잠겨 물건을 배달하거나 자주 차에서 내리는 업무를 할 때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쇠의 본질은 결국 보안이다. 여기에 대해 송 대표는 “보안 부분은 영업비밀에 해당해 자세히 말 할 수 없지만 ‘걱정하지 않으실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고 자신한다”며 “그동안 1건의 보안 관련 사고 이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튜닝하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운 스타트업 대표의 꿈은 무엇일까. 송 대표는 “전화기, 카메라, 전자사전, 신용카드 등 모든 기능이 스마트폰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유일하게 자동차 열쇠만 실물로 남아 있다”며 “차 열쇠도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스마트한 모빌리티 시대를 열고 싶다. 이 단계를 지나면 스마트 시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다는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차키가 일반화되면 세차를 하거나, 차를 정비할 때도 업체에 권한만 주면 비대면으로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남=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모빌리티 열전은? 이동성을 의미하는 ‘모빌리티’는 최근들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존 어리 영국 랭커스터대 교수의 논문을 보면 과거 단순한 교통수단을 의미하던 단어에서 이제는 그 기반이 되는 사회 시스템과 그에 관여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제조국인 한국에서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가 태동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부터 모빌리티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이를 만들고 기획하는 사람과 기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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