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원장 "쾌활했던 정인이, 마지막엔 모든 걸 포기한 듯 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양부모의 학대를 받아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 사건’의 2차 공판이 1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렸다. 이 재판의 첫 증인으로 출석한 이는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 A씨였다. 정인이는 2020년 3월부터 숨지기 전날인 10월 12일까지 이 어린이집에 다녔다.
A씨는 “피해자의 첫 인상이 어땠냐”는 검찰 측 질문에 대해 “처음 봤을 때 율하(정인이의 입양 후 이름)는 쾌활하고 밝고 예쁜 아이였다”며 “연령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3월에서 5월 사이 정인이의 이마, 얼굴 등에 빈번하게 상처가 나는 걸 발견했다. A씨는 “1주 반에서 2주에 한번씩, 얼굴이나 팔 등에 멍이 들었다”며 “그때마다 어머님(양모 장모씨)에게 왜 다쳤는지 물어봤지만, ‘부딪치고 떨어져서 상처가 난 것’이라는 대답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또래 아이들이 상처가 나서 어린이집에 오는 경우는 1년에 한두번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5월 25일 A씨는 정인이의 허벅지와 배에도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A씨가 왜 허벅지에 멍이 들었는지 묻자 장씨는 “아이 아빠가 베이비마사지를 해주다 멍이 든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고민 끝에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정인이에 대한 1차 아동학대 신고였다.
이후 정인이는 7월까지 어린이집을 다니다가, 9월 말까지 두 달 간 어린이집을 쉬었다. 가정학습 기간과 가족여행이 2주 정도 끼어 있었지만 이후에도 결석이 길어지자 A씨는 “왜 율하가 등원하지 않느냐”고 장씨에게 물었다. 장씨는 “코로나 때문에 불안해서 가정 보육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정인이의 언니(장씨 부부 친딸)는 정상적으로 어린이집에 나오고 있었다. 당시 장씨는 “아이를 잠시 차에 혼자 뒀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서, 입양한 아이를 소홀히 한다는 편견이 싫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인이가 다시 어린이집에 등원한 9월 23일, A씨는 “심하게 야윈 모습에 저와 교사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아이가 너무나 많이 야위었고 안았을 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불안함을 느낀 A씨는 정인이 양부모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정인이를 어린이집 인근 소아과에 데려가 진찰을 받았고, 이 소아과 의사가 아동학대를 의심하며 3차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졌다. A씨는 “이날 어머님과 통화했을 때 ‘부모에게 말도 없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면 어떡하느냐’고 했는데, 정인이의 상태에 대해선 별다른 질문이 없었다”고 했다. 이후 정인이는 추석연휴 직전인 29일까지 정상적으로 등원하며 차츰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연휴가 끝난 후 정인이는 다시 결석하다가, 10월 12일 다시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A씨는 “9월에 왔을 때보다 더욱 심각한 모습이었다”며 “맨발로 왔는데 손발이 너무 차가웠고, 스스로 이동하질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검찰 측이 공개한 당시 어린이집 CCTV 화면에서 정인이는 A씨가 자신의 앞에 세워놓은 채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해도 다리를 후들거리며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A씨는 “머리 부분에도 빨갛게 멍이 들어 있었고, 팔다리는 너무나 가늘었는데 배만 볼록 나와서 너무 의아했다”고 했다. 이날 정인이는 이유식을 먹여도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고, 평소 좋아하던 과자도 먹질 않아 기저귀도 한번도 갈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울먹이며 “그때 율하는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날 하원하는 정인이를 데리러 온 것은 양부 안모씨였다. A씨가 안씨와 면담하며 “아이가 아무 것도 먹지 않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꼭 병원에 데려가시라”고 당부했지만, 안씨 역시 “네”라는 대답을 반복할 뿐 정인이의 상태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이튿날 정인이는 사망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