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꽃이 아니고 곰팡이입니다
사진에 나온 꽃들은 언뜻 보면 구분이 안 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맨 왼쪽 꽃과 나머지 둘은 꽃잎에서 차이가 난다. 왼쪽은 자이리스(Xyris)로 불리는 풀꽃이고, 오른쪽 둘은 이 꽃에 기생하는 곰팡이인 ‘푸사리움 자이로파일룸(Fusarium xyrophilum)’이다.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지난 2일 “곰팡이가 꿀벌과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을 유인해 포자를 퍼뜨리려고 꽃모양으로 진화한 사례가 처음 발견됐다”고 밝혔다. 심지어 곰팡이는 꽃이 빛을 반사하는 형태와 향기까지 모방해 곤충들을 유인했다.
꽃모양 곰팡이는 지난 2006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케니스 워댁 박사가 남미 가이아나 카이터국립공원의 활주로에서 발견했다. 처음엔 모두 노란색 자이리스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한쪽의 주황색이 좀 더 강했다. 모양도 암술이나 수술 구분 없이 꽃잎이 뭉쳐 있고 스펀지 같은 질감이 두드러졌다.
결국 모양이 조금 다른 이 꽃은 자이리스가 아니라 곰팡이 자이로파일룸으로 밝혀졌다. 워댁 박사는 미국 농무부 산하 농업연구소의 이메인 라라바 박사 등과 함께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 ‘균류 유전학과 생물학’에 이 꽃모양 곰팡이를 발표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농업연구소의 케리 오도널 박사는 “자이로파일룸은 지구상에서 곰팡이가 꽃 자체를 모방한 유일한 사례”라고 밝혔다. 다른 곰팡이도 식물을 모방하지만 대부분 잎에 영향을 준다. 이를테면 푸크시니아목(目)에 속하는 녹병균 곰팡이는 숙주의 잎을 꽃처럼 바꿔 곤충을 유인한다. 블루베리에 감염되는 한 곰팡이는 잎에서 꽃향기를 내게 하고 꽃잎처럼 자외선도 반사시킨다.
곰팡이가 아예 꽃이 되기로 한 것은 자손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자이로파일룸 곰팡이는 자이리스 꽃에 기생한다. 꽃이 죽으면 곰팡이도 갈 곳이 없어진다. 자이로파일룸은 다른 숙주를 찾기 위해 자이리스가 꽃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대신 자신이 꽃모양으로 자랐다. 곰팡이는 자신을 꽃으로 오인한 꿀벌을 통해 포자를 다른 자이리스 꽃으로 옮길 수 있다.
모양만 꽃과 같은 게 아니다. 연구진은 꽃모양 곰팡이에서 실제 꽃처럼 자외선을 반사하는 색소 두 가지를 찾아냈다. 또 곰팡이는 곤충을 유인하는 화학물질도 10가지나 방출했다.
연구진은 남미 가이아나에 가서 실제 자이리스 꽃과 자이로파일룸 곰팡이가 내는 물질을 비교하려 했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무산됐다. 대신 미국에 사는 비슷한 자이리스가 방출하는 화학물질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꽃과 곰팡이는 모두 꿀벌을 유인하는 2-에틸헥사놀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쯤 되면 꿀벌도 짝퉁 꽃을 가려내는 능력을 진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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