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뚜껑 열리는 부동산 대책 / 양창모
[숨&결]
양창모 ㅣ 강원도의 왕진의사
그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한 일은 따듯한 커피 한잔을 내려 창가에 가서 우아하게 마시는 일이 아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망치와 정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간밤에 얼어붙은 베란다의 얼음을 깨는 일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몇 년 전 겨울에 내가 세 들어 살던 2층 전셋집 얘기다. 처음 그 집을 보러 간 날, 10월이었는데도 집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집이 너무 추운 것 같다고 했더니 중개업자가 하는 말은 ‘얼마 동안 비어 있어서 그렇고 난방을 잘하면 전혀 춥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믿고 계약을 했고 집에 들어와 살면서 난방을 정말 잘했지만 집은 전혀 따듯해지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거실에 있다 보면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견디다 못해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거실에 단열을 위한 새시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하소연을 듣고 난 집주인이 하는 말은 이랬다. “집이라는 곳이 따듯한 느낌이 있어야 되는 건데 그렇게 웃풍이 세면 살기 참 힘들겠네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내 얘기에 공감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그러니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삽니까, 그냥 이사하세요!”였다. 말문이 막혔다. 결국 나는 그 겨울 내내 출근 전 베란다로 가서 망치질을 해야 했고 집주인은 나중에 집세를 올려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즈음의 집은 내게 꿈을 잡아먹는 장소였고 집주인은 도둑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가 몇 년 동안 아끼며 저축해놓은 돈은 모두 집세 올린 집주인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그들은 법을 어긴 범법자는 아니지만 내 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털어가고 있었다. 집주인이 그토록 자신감이 있었던 건 춘천의 전세난 때문이었다. 그때 춘천 아파트 가격은 급격히 올라서 어떤 곳은 2년 전 가격에 비해 두 배가 됐다. 원인은 개발이었다. 서울에서 춘천역까지 전철이 놓이게 된 것이다. 개발은 그전까지 같은 시민이었던 사람들을 피해자와 수혜자로 갈라놓았다. 하늘(실제로는 정부와 토건세력)에서 개발이라는 사다리가 내려오자 그전까지 평화롭던 도시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파트를 사서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부러움의 대상이 됐지만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부부싸움이나 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사회적으로도, 더 슬프게는 스스로도 피해자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무능력자일 뿐이었다. 수혜자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능력자였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사회의 특징이라면 그곳은 부끄러운 사회였다.
적어도 부동산 시장에서만큼은, 우리는 서로 쓰레기통에서 뒹굴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비극 속에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다들 무능력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수혜자 집단에 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기세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그런 이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들 ‘벼락거지’가 되고 싶겠는가. 쓰레기통 안에 아무리 악취가 가득 차 있다 한들 그것은 뚜껑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사회 안에 고통의 목소리가 아무리 만연해 있다 한들 고통 그 자체는, 무력한 냄새처럼 시스템이라는 뚜껑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뚜껑을 들어 올려줄 힘은 결국 정치에서 나온다. 지금 한국에 그런 정치가 있는가. 무차별 공급이라는 사다리를 기다렸던 게 아니다. 지금의 집값을 끌어내릴 수 있는 저렴한 주택들을 정부가 공급해주길 바랐지만, 내놓은 정책들은 아파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를 없애주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매일 산책을 나가는 개천 길가에는 최근 몇 년 동안 몇억이 올랐다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보란 듯이 서 있다. 30층이 넘는 이 건물은 시내 어디에서든 보인다. 개천을 따라 저녁마다 줄지어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저 아파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도 수혜자가 되는 데 실패한 피해자들의 집집마다 체념과 분노로 들썩거리는 뚜껑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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