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四色] 어쩌다 동네 견문록 [함영훈의 멋·맛·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맘껏 여행하지 못하니,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처럼 주변 사물, 자연을 더 자세히 본다.
마치 '인간은 예술적 동물'임을 증명하듯 작은 것에서 내밀하게 아름다움을 더 찾아내는 심미안이 팬데믹 이전보다 발달한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 시국, 우리는 동네 한적한 길 위에서 장거리여행 못지않은 감흥을 얻는 경지에 이른다.
근처 서울 방어용 대포들이 있었던 포방터를 지나면 복개천 내부 예술공간 '홍제유연'이 반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맘껏 여행하지 못하니,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내 방을 여행하는 법’처럼 주변 사물, 자연을 더 자세히 본다. 마치 ‘인간은 예술적 동물’임을 증명하듯 작은 것에서 내밀하게 아름다움을 더 찾아내는 심미안이 팬데믹 이전보다 발달한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 시국, 우리는 동네 한적한 길 위에서 장거리여행 못지않은 감흥을 얻는 경지에 이른다.
퇴근 무렵 후암시장이 보이자 ‘왜 후암, 어떤 후암이지?’라는 1차원적 의문은 3차원 여행으로 이어진다. ‘두터울 후, 바위 암’, 남산도서관 근처에 있는 두텁바위에서 유래됐고 둥글고 두툼한 이 바위는 아이를 낳게 해달라는 등의 소원을 비는 장소였다고 한다.
인근에 소월길, 소파길이 있기에 어떤 사연일까 잔뜩 기대해본다. 하지만 좀 싱겁다. 도서관 옆 소월시비, 남산공원 소파동상이 있다는 이유로 갖다붙였다. 500여 서울 도로명에서 일제 잔재를 지우려고 우리식 이름으로 일제히 교체하다 보니 급했다고 한다. 어쨌든 살짝 설렜다.
후암동 북쪽 언덕마을은 도동인데, 복사꽃 군락이 아름다운 복숭아골이었다. 전망 좋은 곳엔 ‘오성’ 이항복의 친구, ‘한음’ 이덕형이 서책을 읽던 송경재가 있었다. 요즘도 이 일대를 ‘쇠경재’라 부른다. 성문 바로 바깥 언덕이라 성내 천촌만락을 한눈에 굽어보고, 녹지대가 풍부해 문인, 양반네의 근거리 유람지였다. 그래서 맛집이 많았을 것이다. 수도권엔 이 동네 이름을 딴 식당 간판이 많다. 게다가 근처엔 국가 제향음식에 쓸, 양질의 양·돼지 사육기관 ‘전생서’가 있었다.
“우리 동네 볼 것 별로 없는데” 했다가 볼 게 많아진 요즘이다. 새해 ‘쇄신여행’지로, 유라시아 땅끝 포르투갈 호카곶, 2365m 꼭대기를 케이블카로 등정하는 터키 올림피아산, 제주 한라산, 울릉도 도동전망대, 임실 성수산 등을 거론하는데, 서울사람들은 세검정 근처 옥천암~북한산 비봉 코스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면역력을 키우면서 진흥왕 순수비 찍고 내려와, 홍제천변 펄펄 노는 저 왜가리 암수 서로 정다운 모습 보면서 데크길로 세검정~홍지문을 거쳐 옥천암에 이르면, 보물 ‘마애보살좌상(白佛)’을 만난다. 이성계 등 중세~현대 거물들이 이곳을 찾아 예를 갖추고 나서 대운을 잇기도 했다고 한다. 근처 서울 방어용 대포들이 있었던 포방터를 지나면 복개천 내부 예술공간 ‘홍제유연’이 반긴다. 3D 홀로그램으로 움직이는 빛의 조각을 연출했다.
이런 매력들, 대한민국 구석구석 어느 동네든 다 있다. 충북 남부사람들은 조선 최고음악가 박연이 피리 소리를 내며 물폭탄 떨어지는 소리와 경쟁했던 영동 ‘옥계폭포’ 나들이를, 경북 북부사람들은 남원 일대 관직과 암행어사도 했다는 성씨 영감네 본거지 봉화 춘양면에서 ‘춘향전 실화냐’ 고증을 해볼 만하다.
경기 고양 사람들은 서오릉 서어나무길 옆, 남편(영조) 능 자리는 빈 채 첫째 중전 정성왕후 봉분 하나만 외롭게 있는 ‘홍릉’과 영조가 사랑했던 후궁 영빈이씨의 ‘수경원’을 거닐면서 ‘영조는 왜 손녀뻘 계비와 구리 원릉에 묻혔을까, 조강지처 옆에 묻히겠다는 약속이 노론 독재 때문에 지켜지지 못했을까’ 상념에 잠겨도 좋겠다.
심미안은 H. 마르쿠제가 신(新)사회변동의 근원적 동력이라고 했다. 동네 산책에도 인문학을 두툼하게 만드는 능력은 이 시국 또 하나의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함영훈 문화부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체조요정’ 손연재, 럭셔리 라이프 공개…“생일은 파리에서 남편과 함께”
- “결국 터질 게 터졌다”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 업무 거부로 난리?
- '칸 영화제 단골' 송강호, 폐막식 시상자로 선정
- "이선희, 보컬 레슨비로 43억 받아"…권진영과 '경제공동체'?
- “5만원→20만원 간다” 소문에…전국민 열풍 난리 났었는데
- “바다 바퀴벌레? 먹어도 되는 거죠” 한그릇 6만4000원 라멘 봤더니
- “이게 애플워치보다 30년 먼저 나왔다고?” 어디서 만들었나 봤더니
- 교실서 상담하다 “키스는 괜찮지 않아?” 여고생 추행한 40대 교사
- “115만→50만원” 삼성 제품 너무 싸다 했더니…알고보니 이런일이
- '혈액암 투병' 안성기, 건강 회복?... 환한 얼굴로 들꽃영화상 시상식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