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법부의 침묵, 민주주의 짓밟는다

기자 2021. 2. 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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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사회부장

법관들 민주주의 마중물 역할

권위주의 시대에도 독립 앞장

지금은 위선과 탄핵거래 방관

권력 하수인 같은 정치 판사들

自淨 가능케 할 면역체계 붕괴

바이러스 퇴치에 적극 나설 때

울지 않는 닭은 더 이상 닭이 아니고, 짖지 않는 개 역시 개가 아니다. 횃대와 망루를 차지했더라도 스스로 존재 의미를 상실한 죽은 물상(物象)이다. 눈 뜨고 숨 쉬더라도 곧 가마솥에 던져질 신세나 다를 바 없다. 17일로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말 사태 보름, 대다수 일선 판사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일부의 소수만 법원 통신망에 ‘김명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법관들의 대표인 대법원장의 거짓말에도 눈만 끔벅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판례, 아니 전례를 보면 “아니올시다”가 맞다.

법관들은 민주주의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1년 7월 판사 153명은 서울중앙지검의 이범렬 부장판사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해 ‘사법권 수호 건의문’을 발표했다. 1차 사법파동이었다. 겉으론 당시엔 관행이던 변호사의 판사 접대금액 9만7000원을 문제 삼아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사건에서 촉발했지만, 안을 보면 월간 ‘다리’ 필화사건 등 잇단 반공법 재판 무죄판결로 쌓인 정권의 불만이 원인이었다. 판사들은 “동료 법관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검찰이 사법권 독립을 위태롭게 한데 연유한 것”이라고 궐기 이유를 밝혔다. 권력이 검찰을 손에 쥐고 사법부를 흔들던 박정희 권위주의 시대의 초상이었다.

2차 사법파동은 군사독재 사법부 회귀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1988년 2월 소장판사 335명은 노태우 대통령이 전두환 정권에서 중용된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임명하자 ‘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했다. 주역이었던 김종훈, 유남석, 이광범, 한기택 등 소장 판사는 이듬해 우리법연구회를 창립했다. 1993년 2월 3차 사법파동에서 박시환, 강금실 등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은 정치 판사 퇴진을 내걸고 전면에 나섰다. 진보판사 대법관 임명을 요구한 2003년 8월 4차 사법파동에서도 우리법연구회가 움직였다. 86 운동권 그룹이 문재인 정부에 갖고 있는 지분처럼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 독립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는 변질됐다. 투쟁으로 사법부 권좌를 장악했지만, 스스로 정치의 시녀가 됐다. 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그 민낯을 보여준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2020년 5월 녹취록을 들으면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하면 탄핵 이야기를 못 하게 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건 적절하지 못할 거 같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탄핵 문제를 말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결국, 임 부장판사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재판개입’을 빌미로 탄핵소추 당했다.

경악스러운 진실은 녹취록에 다섯 번 나오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판사는 법과 원칙이 금과옥조지만 그의 판단 잣대는 상황이다. 김 대법원장은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말했듯 ‘시대의 피조물이고 상황의 자식’인 정치인이다. 대법원장 가면을 쓰고 정권과 교감하면서 법관을 먹잇감으로 바치는 정치 판사다. 정치 상황을 중요시하면 외압 크기에 따라 형량은 달라진다. 곡학아세다.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이 대법원장 사퇴 촉구를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정치적으로 김 대법원장과 한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3차 사법파동 건의문은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판사들은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하기도 했고, 판결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기도 했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사법부 독립이 아니라 사법부 장악이라는 비판에도 할 말은 없어 보인다.

더 절망스러운 진실은 법관들의 침묵이다. 3000여 명에 달하는 그들은 150명 정도인 우리법연구회 판사들 뒤에서 수수방관할 뿐이다. 진보판사들이 포진한 탓인지 전국법관대표회의도 시체처럼 잠잠하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조직과 국가를 망치는 것도 부정부패가 아니다. 바이러스에 저항하고, 비리에 대항하는 면역 시스템의 붕괴다. 그 시스템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파괴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죽는다. 사법부 독립과 정치 판사 퇴출을 다시 외쳐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 민주주의 살해 방조죄로 서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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