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야당 패싱'의 편리함이 여당에 주는 경고

김병헌 2021. 2. 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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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신임 정의용 외교부 장관,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해야...소통을 멈추면 권력은 타락한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마땅한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편에 ‘군자 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君子 不以言擧人,不以人廢言)이라는 구절이 있다. ‘화려한 언변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며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관계·지위 때문에 귀를 닫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분야에 완벽했을 것 같은 공자(孔子)도 인사에서 실패한 적이 있다. 2번이나 사람을 잘못 평가했다.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실패 사례가 나온다. 공자는 ‘말재주만 보고 골랐다가 재여에 실수했고, 외모로 판단했다가 자우에게 실패했다(오이언취인 실지재여 이모취인 실지자우/吾以言取人 失之宰予 以貌取人 失之子羽)’고 토로했다.

공자의 제자 자우는 얼굴이 매우 못 생겼던 모양이다.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학문과 덕행을 닦는데 힘썼고 공사(公私)가 분명하게 일을 처리해 따르는 제자가 300명이나 됐다고 한다. 반면 재여는 언변이 좋아 제자로 삼고 예뻐했지만 천성이 게을렀다고 한다. 나중에 공자가 ‘썩은 나무는 조각을 할 수 없다’고 비유했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을 갖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장관 배우자와 부친에게 장관에 대한 당부나 격려의 의미가 담긴 꽃다발도 전달했다.

15일 문 대통령에게 임명장 수여 받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뉴시스

이들 장관들에게 거는 기대가 높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들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고스란히 문제는 드러났다. 그런데도 국회에서는 야당 동의 없이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는 이른바 여당의 ‘야당 패싱’이 이번에도 나왔다.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능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최근 들어 국회의 인사 검증을 통해 후보자의 과거 부적절한 행태가 드러나고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어도 여당은 단독으로 보고서를 채택하는게 어느새 ‘자연스러운’ 패턴이 돼 버렸다. 상당히 우려스럽다. 신언서판(身言書判)과 적재적소(適材適所) 원칙은 공자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인사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문재인 정부 초기만 해도 여론과 국회의 검증에 걸려 자진사퇴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야당의 반대가 과도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본은 지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야당 패싱'은 지나친 오만과 불통의 결과로 여겨진다.

장관 입각이 친문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럽다. 최근 임명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황 장관, 권 장관은 친문 핵심 의원들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부담스러운 ‘야당 패싱’까지 해가며 ‘우리 편 입각’을 고수하는 것은 임기 말로 갈수록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일사분란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국민의힘 김석기 간사, 김기현 의원 등이 지난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퇴장하고 있다. /더팩트 DB

인사청문회의 원래 취지는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는데 있다.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인사에 국정동반자의 의견을 반영, 적재적소에 맞는 인사를 발탁하기 위한 목적인데 매번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외부와의 소통을 멈추고 이렇게 내부논리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권력은 타락한다. ‘패싱’이 그 전조라고 본다. 국민들은 ‘야당 패싱’이나 하라고 여당에 거대 의석을 몰아준 게 아니다.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하면 웬만한 난제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진영논리만으로 뭉친 정치권의 행태가 원죄이긴 하다. 외교 국방은 물론이고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19 사태 해결마저 정쟁의 대상이다. 인사청문회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여당이 '패싱'이라면 야당은 죽기살기로 '흡집내기'로 맞서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 불신은 이 같은 여야의 소모적 정쟁을 자양분으로 자라고 있다. 윤석열 신드롬과 같은 현상이 큰 선거때 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도 정치 불신에서 비롯된다. 선거때만 되면 안철수·반기문 등 비정치권 인사가 관심받았던 이유도 소통과 배려를 기본으로 한 문제 해결보다는 치킨 게임식의 승부로 승패를 가려왔기 때문이다.

행불유경(行不由徑),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서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바른 길로만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자 제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열 명을 지칭하는 공문십철(孔門十哲) 중 한명이다.

눈앞의 이익이나 편리함을 욕심내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여당이 거대 의석을 이용한 ‘야당 패싱’등 지름길의 편리함에 길들어지면 국민들에게 ‘패싱’당할 수 있다. 국정에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하는 여당은 지름길보다 언제나 바른길로 다녀야 한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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