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
교육 공백의 파고는 학생들에게 각기 다른 높이로 닥쳤다. 가난하고 취약한 환경의 학생일수록 피해가 컸고 원래 여건이 좋았던 학생은 의외의 혜택을 입기도 했다. 지난해 9월 OECD는 ‘학습 손실의 경제적 영향’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현재 초중고 연령대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손실 때문에 평생 동안 3%가량 소득이 낮아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평균값이다. 누군가는 소득의 30%나 80%를 잃는 반면 어떤 이의 소득은 10% 늘어날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전체 케이크의 크기가 줄어든 상태에서 나누는 몫의 격차가 커질수록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양극화가 심하고 갈등이 높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생애 초기 한국전쟁 경험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친 영향(2015)’ 등 재난 세대 코호트 연구를 해온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공백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살펴볼 때,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교수는 이 격차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더 큰 충격’이다. “학교가 똑같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됐을 때 소득이 낮거나 돌봄 여건이 열악한 가정의 학생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째는 ‘더 낮은 복원(remediation) 가능성’이다. “부모의 조력이나 학원·과외 등 보충 투자를 통해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는 계층이 있었고 그렇지 못한 계층이 있었다.” 코로나19가 발행한 가장 비싼 장기 할부 명세서를 받아든 집단은 정확히는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들이었다.
교육 공백을 채운 것이 무엇인지 보면 그 공백의 영향을 더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지난 한 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는 대신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얼 했을까. 어떤 영역이 팽창했고 어디에서 가장 쪼그라들었을까.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7월 경기도 내 중학생들에게 최근 일주일 동안 방과(원격 수업) 후 어떤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물었는데(‘중학생의 생활과 문화 연구’), 가장 높은 비중이 ‘스마트폰 가지고 노는 시간(8.51시간)’이었다. ‘운동 및 신체활동 시간(1.96시간)’이나 ‘친구 만나서 노는 시간(3.19시간)’은 자투리에 불과했다. 이런 경향은 ‘공평’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월29일 발표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어린이 청소년 미디어 이용실태 조사(초 4~6학년 대상) 결과에 따르면 경제 수준 하위권 가정의 어린이(36%)는 경제 수준 상위권 가정의 어린이(15.1%)에 비해 하루 4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비율이 2배 이상 높았다. 게임 이용률도 높았다. 미디어 이용에 대해 적절하게 지도를 받는 비율은 낮았다. 읍면 지역 거주 아이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가난하거나 시골 지역에 살수록 디지털 노출도가 증가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게임기 화면에 고개를 처박는 이유는 대부분 ‘다른 놀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린 기회는 사실 학습 기회보다 다양한 놀이와 문화를 경험할 기회에 쏠려 있다. 원격 학습과 제한적인 등교는, 국영수 교과목 진도는 그나마 충실히 빼주었지만 학생들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여러 ‘문화자본’ 축적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그런 문화자본은 기초적으로 소풍·운동회·수학여행·졸업식·입학식 같은 생애 이벤트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각 학교·학년별로 다양하게 실시하는 수영 교육, 자전거 실습, 영어 체험마을 탐방, 1인 1악기 수업, 진로탐방 견학 같은 세부 활동일 수도 있다. 사교육 혹은 부모의 재력·정보력으로 채워지던 이것들 중 많은 부분이 학교 같은 공교육과 복지 영역에 들어와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표준화된 문화자본을 제공해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비싼 사교육을 시킬 여력이 없는 집 아이들도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 등을 통해 평일 오후 시간을 바둑·과학실험·클레이·바이올린·3D 아트펜·리듬줄넘기 같은 특기적성 교육으로 채울 수 있었다. 동네 곳곳의 도서관·미술관·박물관·체육시설·청소년센터·지역아동센터·대학 부설 교육원 등 여러 국공립·시립·구립 교육복지 문화기관들도 양질의 아동·청소년 교육 프로그램들을 무료로 제공해왔다. 지난 한 해 학교 문과 동시에 이곳들의 문도 함께 닫혀버렸다. 피해는 이 자원 말고는 이용할 대체재가 없는 아이들에게 집중되었다.
문화자본을 빼앗겼다, 가난한 아이만
고지현 기아대책 나눔문화팀 간사는 “아동복지사업 현장에서 취약한 아동들의 기초학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활발히 진행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문화지원 사업은 대부분이 중단되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아대책은 문화정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클래식 악기 수업을 일선 지역아동센터들에 제공해왔다. 악기를 사주고 강사비를 지원했다. 반응이 좋아서 10년간 이어져온 사업인데, 지난해 처음으로 중단되어버렸다. 외부 강사 출입이 통제되고 악기 교육의 특성상 비대면 수업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기 군포시를 중심으로 아동청소년 교육복지 활동을 이어나가는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대표는 코로나19로 무산된 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지역 내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며칠간의 캠프 여행이 가장 아쉽다. 방역을 생각하면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할 활동이지만 그 기회의 상실로 수년 동안 국내 여행 한번 가보지 못할 아이들이 너무 많다. 김 대표는 할머니와 둘이 살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바닷가에 데려갔던 예전 어느 여행을 기억한다. “바닷물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더니 ‘앗, 진짜 짜다’ 이러는 거예요. 그 나이에 난생처음 바다에 간 거죠.” 김 대표는 덧붙였다. “그런 친구들은 캠프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해요. ‘선생님, 저 행복해요.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여행 많이 다니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행복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나중에도 행복한 삶을 꿈꿀 수가 있어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은 개별 가정에서 악기 수업, 사설 과학캠프, 스포츠클럽 같은 경험들을 은근히 다 누렸다. 여름과 겨울 방학 동안 워터파크도 가고 놀이공원도 다녔다. 고급 호텔과 풀빌라, 스키장 예약이 꽉꽉 들어찼다. 개별 가정에서 이런 ‘행복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코로나19 이전까지 학교나 아동청소년 복지시설 같은 교육·복지 기관들에서 미약하게나마 그것들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한 해는 그 기회마저 몽땅 사라졌다.
지난 한 해는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벼랑 끝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아동심리상담 센터에서 위기 아동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과 치료를 진행해온 한 정신보건사회복지사는 지난해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종결돼버린 사례’들이 너무 많아 속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공공기관 휴관 조치에 묶여 센터 문을 한 해 3분의 1밖에 열지 못했다. 문을 열어도 비대면 상담이 많아 실질적인 개입과 치료가 어려웠다. 코로나19 이전에 겨우 공공자원과 연결돼 치료 등 지원을 받기 시작한 아이들이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가정폭력에 더 노출되거나 가정이 해체돼 시설로 보내지는 경우들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제일 속상할 때는 악조건 속에서도 근근이 버텨나가던 아이가 어느 순간 끈을 놓아버리는 모습을 목격할 때였다. “빈곤, 방임과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긴 했지만 공공이 제공하는 여러 교육복지 서비스에 많이 연계돼 있고 그걸 잘 활용하면서 버텨가던 아이가 있었어요. 지자체나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멘토링 사업,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연결된 특기적성 프로그램, 인근 대학교에서 개설된 교육 캠프 등을 통해 성적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자존감도 챙기던 아이였는데, 학교와 공공시설의 이런 서비스들이 중단된 뒤로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온라인 수업도 전혀 안 듣고 PC방에 머물면서 새벽 2~3시까지 게임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공공이 방역의 최일선이어서 발목이 묶인 역설이었다. “공공이 데드라인이어야 하는데 공공이 먼저 닫아버린 거죠. 문 닫지 말고 시간 간격을 두고 대면 상담과 치료를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감염 발생 시 누가 책임을 질 거냐’라는 문제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했어요.”
아예 포기해버리는 아이들
경기 의정부시에서 이동형 청소년 쉼터 ‘포텐’을 운영하는 전종수 소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이 지난 한 해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지침과 거리두기 기조 때문에 특히 더 갈 곳과 도움받을 손이 부족했어요.” 추운 겨울밤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던 열다섯 살 청소년이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할 곳이 필요했는데 아무 보호시설에서도 그 아이를 받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지적장애를 겪는 미혼모 청소년이 출산 후 지원을 받아 산후조리원에 입소했는데, 몸이 아파 외부 병원을 이용했다가 코로나19 위험을 핑계로 조기 퇴원을 요구받는 일도 있었다.
6년 전 처음 인연을 맺어 다독이고 북돋우면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게 된 ‘거리의 청소년’이 있었다. 지난해 연말 전 소장은 오랜만에 그의 전화를 받았다. 새벽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다 빙판길에 넘어져 어깨를 크게 다쳤는데 도와주는 곳이 없어, 망설이다가 전 소장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거리에 차려진 이동형 쉼터 ‘포텐’을 통해 상담과 지원을 요청한 위기 청소년 수는 2019년 7198명에서 지난해 2745명으로 떨어졌다. 전 소장은 “아이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처음 외부에 도움을 청해보다가 그것들이 닫히고 막혀 있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이후론 아예 포기해버린다”라고 말했다.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감염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 현장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취약한 아동 청소년을 도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서비스 체계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교육 공백’ 기획 순서①1년의 공백 100년의 상환②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③닫힌 교문 열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④교육 복구 시작은 ‘마이너스 베이스’에서⑤학교 폐쇄는 우선순위를 파괴한 것"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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