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교육 공백 100년짜리 빚이 되다

변진경 기자 2021. 2. 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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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어야 한다. 학교는 감염의 핫스팟이 아니며 아이들은 덜 위험하고 덜 전파한다. 무엇보다 학교 폐쇄는 아이들과 그다음 세대에 막대한 비용을 청구하게 될 것이다.
ⓒ시사IN 이명익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된 무언가를 선택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밖에서 뛰어놀거나 친구들과 만나게 하지 않았다. 도서관·박물관·체육관·지역아동센터·청소년센터 같은 사회·복지·문화·체육 공공시설의 문을 닫고 계획된 프로그램들을 취소시켰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최대 가치는 방역이었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였고 우리 모두는 두려웠다.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학교 문을 닫는 선택 또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확진자 수, 더 높은 어린이 감염률, 더 잦은 학교 내 감염 사례 같은 것들이다. 이런 비용은 매우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우리 앞에 청구된다.

최악을 피하려 차악을 선택했다. 하지만 차악이라 판단한 선택에도 대가는 뒤따른다. 제한적인 등교 수업으로 학생들은 학습 손실을 경험했다. 또래 집단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차단됐다. 신체를 단련하고 감수성을 증진하고 정서를 고양시킬 기반을 잃었다. 다양한 공동체 경험과 문화자본을 쌓아줄 매개 공간과 사람이 사라졌다. 이 공백의 비용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즉각 청구되지도 않는다. 천천히,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갚아나가야 할 빚이다. 상환의 주체는 선택을 행한 현재의 어른들이 아닌, 자라나는 미래세대다.

과거로 돌아갔을 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냐는 물음에 이 기사는 답을 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우리의 선택이 과연 최악이 아닌 차악이 맞는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급한 일들이 있다.

첫째, 이미 진 빚의 규모와 성격을 가늠해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지워준 빚이 얼마짜리인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둘째, 누구에게 그 빚이 더 전가되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재난의 피해는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 많이 무너진 곳을 발견해서 복구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셋째, 상환을 도와야 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그 빚을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덜 고통스럽게 탕감할 수 있을지 방법을 강구해주어야 한다. 동시에 빚을 더 불리지도 말아야 한다. 코로나19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과거에 불가피했다고 판단한 그 선택이 지금 현재에도 과연 타당한지 불가피성을 다시 평가하고, 다른 선택지들이 더 생겨나지 않았는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아이들이 훗날 ‘코로나 세대’라 불리는 불행한 집단이 되지 않게끔, 그들에게 큰 빚을 안겨준 어른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다.

ⓒ시사IN 이명익

한국인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교육의 가치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다. 방역을 위해 등교 제한을 감수했고 입시 학년에 가까워질수록 그 원칙을 풀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축적된 과학적 데이터들에 따르면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세계 보편적인 흐름도 아니다. 이 선택으로 감수한 비용은 국가적으로는 남은 세기 동안 GDP 1.5% 감소, 개인적으로는 평생 임금 3% 하락이라는 추정치가 나왔다. 학생들의 사회성 손실과 정서적 피해는 계산조차 불가능하고 원격 수업으로 대체하기도 힘들다.

■ 명백한 여론 “우리는 등교를 포기한다”

〈시사IN〉은 지난해 11월 KBS와 함께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란 주제로 대규모 웹 조사를 벌였다(제692호 커버스토리 참조). 그때 설문 문항 가운데 교육 위기에 관한 질문들도 포함됐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하는 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여론은 명백했다. 응답자들은 초중고의 등교 최소화를 원했다. 등교 제한으로 인한 교육 위기를 걱정하긴 했지만(84.4%), 자영업(93.9%)·청년 고용(92.1%)·실직(91.7%)·건강(91.5%)·기업 도산(88.7%) 같은 다른 위기를 걱정하는 응답자들이 더 많았다(〈그림 1〉).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81.6%), 학습 격차(83.6%), 사회성 저하(78.5%) 등을 우려했으나 등교 학생들의 감염(95.1%), 감염 학생들이 가족과 이웃에 바이러스를 퍼뜨릴(94.3%) 위험을 더 걱정했다(〈그림 2〉).

그래서 국민들은 “아이들의 미래에 피해를 주지만, 방역이 우선이므로 (등교 제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의 미래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철회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4.6%에 불과했다(〈그림 3〉). 특히 어린 학생일수록 등교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가서는 안 된다”는 비율은 저학년일수록 높았다. “매일 가야 한다”는 의견은 고학년일수록 상승했다. 고3에 대해서는 매일 등교 의견이 36.3%에 이르고 등교 반대 의견이 9.3%에 불과했다(〈그림 4〉). 방역이 교육의 가치를 눌렀지만, 입시의 가치 앞에서는 방역 논리도 힘을 쓰지 못했다.

■ 과학적 사실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곳”

과학은 지난 한 해 우리의 선택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지난 1년 사이 축적된 실증적 데이터에 따르면, 학교는 다른 곳들보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이다. 독일·오스트레일리아·아일랜드·이탈리아·미국 등 전 세계에서 학생 등교가 코로나19 확산과 관련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닫힌 교문 열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기사 참조). 코로나 상황이 심각한 국가나 덜한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의 가톨릭 의과대학 제멜리 병원재단 연구진이 낸 논문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지역사회 감염자 수가 다시 증가하던 지난해 9월 6만5000개 이상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 개학 4주 후 감염이 발생한 학교는 1212개에 그쳤다. 이 학교들 가운데 93%에서 단 한 명의 감염자가 보고됐고, 단 한 곳의 고등학교에서 10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머독 어린이연구소’의 지난해 9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 빅토리아주에서 2차 유행이 시작되던 지난해 7월 학교와 보육기관에서 발생한 1635건의 감염 사례 중 3분의 2는 감염자가 한 명에 그쳤다. 사례 중 91%는 10명 미만이었다. ‘정은경 논문’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연구팀이 지난해 11월 소아감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나타냈다.

아이들이 성인에 비해 코로나19 감염률과 치사율이 낮다는 사실 또한 꾸준히 입증되어왔다. 영국 UCL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아동건강연구소(UCL Great Ormond Street Institute of Child Health) 러셀 바이너 교수가 코로나19 감염률에 대한 전 세계 선행 연구들을 메타 분석한 결과, 20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은 20세 이상 성인에 비해 코로나19 2차 감염 확률이 44% 낮게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코로나 감염자 수는 1월22일 현재 10세 미만이 70명, 10~19세가 99명인 반면 20대 이상 성인은 160명이 넘는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아동·청소년 사망자는 지금까지 0명이다.

과학 연구 결과들은 또한 저학년이 고학년보다 코로나19 감염률이 낮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메타 분석 연구에 따르면, 10~14세 어린이들이 그 이상 연령의 청소년보다 감염 확률이 낮다. 독일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Robert Koch Institute)의 연구팀도 6~10세 어린이들이 고학년 학생과 성인보다 덜 감염된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다른 연구에서도 5~11세 아동의 감염률이 12~17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과학자들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추정할 뿐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10월29일 발행한 기사 ‘학교가 코로나19 핫스팟이 아닌 이유’에서 어린이들이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이 낮은 이유를 다루며 이런 소제목을 달았다. ‘미스터리한 메커니즘(Mysterious mechanism).’ 어린이의 감염률이 낮은 이유로 다양한 추정이 나온다. 혹자는 아이들의 폐가 작아 성인보다 감염성 에어로졸(대기 중에 부유하는 고체 또는 액체의 미립자)을 배출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으로 본다. 어린이의 면역 T세포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능력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이의 코에 바이러스 수용체(ACE2) 수가 적은 덕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하게 입증된 가설은 없다.

ⓒAP Photo2020년 8월3일 독일 슈베린 랑코 초등학교 교실. 여름방학을 보낸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 “무위험 옵션은 없다” 등교 강행한 국가들

지금까지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연구의 결과들은 다음과 같다.

학교는 코로나19 감염의 핫스팟이 아니고, 아이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험이 작은 연령대이며, 저학년이 고학년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덜 전파한다.

이런 사실들에 따르자면 다른 시설은 다 문을 닫아도 학교 문은 가장 마지막까지 열려 있어야 한다. 다른 세대는 다 집에 머물러도 아동·청소년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야 한다. 고3보다 초1이나 유치원생이 더 자주 등교하는 것이 감염 관리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한 해 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이니 몰랐고 위험의 최소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여러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정답은 없었고 국가마다 다양한 지점을 선택했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는 방역 우선주의를 선택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교육과 방역의 가치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확진자 수 증가를 감수한 채 과감하게 학교 문을 여는 국가도 있었다. 우선 등교 순위도 우리나라의 선택이 국제표준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OECD가 발간한 ‘코로나19가 교육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그리스와 함께, 입시 시험을 위해 고학년을 먼저 등교시킨 유일한 나라였다. 덴마크·프랑스·네덜란드·노르웨이 등 대부분 국가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이 최우선 등교 순위였다.

독일은 지난해 8월 여름방학을 끝내고 여러 주에서 전면적인 정상 등교를 시작했다. 3월 하순부터 휴업 및 원격 수업에 들어갔다가 4월 말부터 일주일에 1~2회 정도씩 부분 등교를 이어왔으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여론조사기관인 MDR 프라그트(MDRfragt)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6%가 ‘여름방학 후 정상 등교’에 찬성했다. 독일 병원위생협회와 독일 소아감염학회 등 4개 의학 전문단체는 공동 연구보고서를 통해 “특히 10세 미만의 아동들은 감염률이 낮고 전염률도 명백히 낮게 나타나는 데 비해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학교 휴업의 결과는 심각하다. 학교와 유치원은 어떤 제한도 없이 다시 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각 주정부 교육장관 협의체도 지난해 6월18일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습공간일 뿐만 아니라 생활의 장소이며 다른 어떠한 장소도 학교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장관 협의체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등교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영국도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을 설득했다. 교원노조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해 8월24일 대국민 성명을 통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존슨 총리는 “아이들을 학교에 되돌리는 것은 국가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했다. “우리는 올해 초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의료 전문가들이 말했듯이, 학교 내 코로나19 감염 위험은 매우 적고, 학교 폐쇄는 아이의 발달과 건강에 감염 이상의 피해를 줍니다.” 하루 전 영국 보건부 등 관련 당국 책임자들도 학교와 보육시설의 재개를 촉구하는 합의 성명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들의 위험이 성인들보다 현저히 적은 과학적 근거와 그에 반해 확실시되는 학교 폐쇄의 장기적 피해를 설명하는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지금의 팬데믹 상황은 무위험 옵션(risk-free options)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부모와 교사가 자녀를 위한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위험의 균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사무총장은 지난 1월12일 낸 성명 ‘아이들은 학교 중단을 1년 더 감당할 수 없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 폐쇄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 학교가 전염병의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국가가 학교 폐쇄를 선택했습니다. (…) 폐쇄를 해제하기 시작할 때 학교가 가장 먼저 열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또 한 해의 학교 휴교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영향은 다음 세대에도 느껴질 것입니다.”

■ '학교 중단이 안겨준 코로나 세대의 빚'

도대체 무엇이 해외 정책 결정자와 전문가들에게 팬데믹 속 등교 강행 같은 위험한 결정을 촉구하도록 만들었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학교 폐쇄가 지금 아이들의 삶 혹은 그다음 세대에까지 청구하는 비용은 도대체 얼마만 한 크기일까?

당장 주목되는 비용은 ‘학업성취도 하락’이다. 재난 시기 장기 결석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들로 뒷받침돼왔다. 2005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9년 이탈리아 대지진, 2011년 뉴질랜드 지진 당시 피해 지역 학생들이 학교 수업 결손을 겪은 뒤 다른 지역 학생들에 비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지난해 미국 브라운 대학 연구팀에서는 결석, 여름방학, 학교 폐쇄 등으로 인한 수업 결손과 학생 학력 간 상관관계를 다룬 선행 연구들을 종합해 코로나19의 영향을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3~8학년 초·중등 학생의 경우 정상적인 학사일정을 마쳤을 때에 비해 읽기 성취 수준이 63~68%, 수학 성취 수준이 37~50%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런 학습 손실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쯤일까? OECD는 지난해 9월 교육 공백의 손해를 경제적 비용으로 계산한 연구 결과를 하나 발표했다. 교육 경제학자인 에릭 하누셱과 루트거 보스만이 작성한 ‘학습 손실의 경제적 영향’이라는 연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교육 공백으로 인해 전 세계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이 남은 세기 동안 평균 1.5%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 세기 동안 계산된 GDP 손실의 합은 미국의 경우만 총 14조2000억 달러(약 1경5876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1조5000억 달러(약 1677조원)로 계산되었다. 학생 개개인의 손실은 임금 하락으로 나타냈다. 연구진은 1~12학년 학생들, 그러니까 현재 초중고 연령대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손실 때문에 평생 동안 3%가량 소득이 낮아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계산식의 전제는 매우 낙관적인 조건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손실이 평균적으로 한 학년에서 배워야 할 내용의 3분의 1에 대해서만 발생했으며 2020년 3분기에 모든 학교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이 정도 비용으로 끝난다. 이미 현실은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보고서는 서술했다. “학교 중단이 커질수록 이러한 손실은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시사IN 조남진1월12일 온라인 졸업식을 하고 있는 인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 학습 손실보다 더 무서운 사회성 손실

위의 OECD 보고서에서도 계산하지 못한 비용이 있다. “아동의 사회적·정서적 발달의 손실로 인한 잠재적으로 중요한 다른 비용이 있지만 이들의 규모나 경제적 영향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또래 집단과 교류하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사회성 발달 기회, 장기간 고립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 신체활동 부족과 부실한 식단이 초래한 건강 위협 같은 것들이 아이들 미래에 미칠 영향은 아직까지 숫자로 측정할 수 없을 뿐 결코 작은 비용이 아니다. 그 공백이 장기적으로 미래세대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되는 문제 목록이라도 미리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남중 전문 교사’로 상담·교육복지 업무에 종사해온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는 지난 한 해 중학생들 사이 고요와 평화를 바라보며 큰 불안감을 느꼈다. “원래 남중은 1학년 입학하면 서열 정리하느라 엄청나게 싸우거든요.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장에서 필요한 과정이기도 해요. 싸우면서 왜 싸우면 안 되는지, 비열하게 싸워서 손가락질받으면 그게 왜 나쁜 건지 스스로 깨달아요. 혼도 나고 반성문도 쓰면서 2, 3학년이 되고, 점점 점잖아지면서 안 할 건 안 하고 그렇게 성장하는데, 지난 한 해 이 과정을 건너뛰었어요.”

당장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은 줄었다. 원격 수업 환경에선 애초 치고받고 싸우기가 불가능하고 가끔 학교에 오는 날에도 서로 접촉을 줄여야 하니 마스크를 쓴 채 말도 안 섞고 얌전히 앉아만 있다가 하교했다. 대신 안 교사는 가정 안에서 가족을 향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나타낸 학생들의 사례를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접했다. “아이들의 마음속 갈등과 스트레스는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폭발할 거예요. 사춘기 때 못하면 어른이 돼서 나타나고요. 답답한데 왜 그런지, 누굴 탓할지도 잘 몰라서 분노를 약자들에게 쏟아낼 확률도 높아요.”

또 하나 불안한 징후는 처음에는 “심심해요” “외로워요” 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고립된 상황에 적응하고 만족하기까지 하는 모습이다. “아이들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 디지털 기기를 끼고 혼자 지내는 생활을 합법적으로 해보게 된 거죠. 그러면서 ‘혼자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굳이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고착돼가는 거죠.”

소수연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연구부장도 비슷한 문제를 인식했다. “아이들의 관계 맺기 욕구 자체가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많이 들려와요.” 친구를 만나다 보면 친해지고 싶고 개선하고 싶고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선순환을 거치면서 대인관계능력을 키우는데,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은 아이들이 그런 능력을 키울 수도 없고 굳이 키울 필요도 없는 환경이다.

소 부장은 더불어 아이들의 이런 만성화된 우울과 욕구 저하를 외부에서 알아차리기조차 힘든 지금의 교육 환경을 우려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변화를 확인할 만한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 염려돼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나 친구들 눈에 띄어서 ‘뭐 힘든 일 있어?’라고 물어볼 수라도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 거의 막혀버렸으니까요.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심리 정서적 문제를 호소하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개입할 수 있는 체계가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 원격 수업으로 메울 수 없는 가치들

이런 공백들은 원격 수업으로 채울 수 없다. EBS 교육방송과 e학습터의 학습 콘텐츠, 실시간 쌍방향 수업조차도 학생들의 사회성을 발달시키거나 정서적 교류를 만들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서 발간한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수업 방식의 변화가 교사 수업, 학생 학습, 학부모의 자녀 돌봄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코로나19 이후 자녀의 성장과 관련해 가장 걱정하는 부분 1위는 ‘사회성(43.6%)’이었다. ‘기초학력(30.5%)’보다도 훨씬 더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학부모 대부분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자녀의 미디어 노출 시간이 증가하고(86%), 자녀의 운동량이 줄어들었으며(83%), 학부모의 자녀 학습 돌봄에 대한 부담이 늘어났다고(84%) 응답했다. 원격으로 열린 학교는 학사일정만 변동 없이 굴릴 뿐 아이들의 제대로 된 성장과 발달을 충분히 담당해내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이 겪은 교육 위기와 대응에 주목해온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은 〈시사I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원격 학습의 가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교육은 더 이상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을 탐색할 수 있는 나침반과 도구를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핵심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교육 소프트웨어, 특히 취약 아동들을 위한 디지털 콘텐츠들을 개발해온 스타트업 기업 에누마의 김현주 임팩트사업디렉터는 해외 원격 학습 현장에서 어떤 역설을 목격했다. “돈 쓴 데와 실제 학습한 곳이 달랐어요.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에 돈을 썼는데 정작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아이들이 절반 가까웠고 이 아이들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 공부를 했어요. 자기주도학습이 어렵고 특히 아직 기초 읽기와 쓰기를 익히지 못한 어린 학습자들이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만으로 교과 내용을 학습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팀장은 “오프라인 학교에서의 공교육이 도달률 100%라면 온라인에서는 그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환경과 디바이스(기기), 디지털 학습 콘텐츠(소프트웨어), 부모의 관심 정도에 따라 도달률이 제각기 다르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학생들의 상호작용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느냐다.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게 하는 원격 수업은 한계가 명백해요. 각각의 학습 연령과 학습 공간(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어린 학습자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이 너무 급하게 시작돼버렸어요.”

‘교육 공백’ 기획 순서①1년의 공백 100년의 상환②힘든 아이가 더 떠안는 교육 공백의 빚③닫힌 교문 열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④교육 복구 시작은 ‘마이너스 베이스’에서⑤학교 폐쇄는 우선순위를 파괴한 것"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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