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우주 탐험>'인간다움 근본' 뇌 연구하는 과학..'엄격한 윤리' 필요하다

노성열 기자 2021. 2. 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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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송재우 기자

■ ⑧ 뇌 연구의 윤리성

뇌기능 증강 기술 활용땐

허용기준·명확한 목적 등

윤리적 가이드라인 절실

국내선 2017년 연구 첫발

아직도 불모지나 다름없어

연구·교육 시스템 갖춰야

과학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현실에서 실제로 ‘과학 하는’ 주체는 인간이라서다. 과학자는 신이 아니다. 생명, 차별과 혐오, 경제적 이익과 후생복리 등 수많은 가치 판단 앞에서 과학은 늘 경계의 담장 위를 걷는 위험한 곡예를 해왔다. 과학사에는 인명 대량학살에 협조한 독일 나치 정권의 ‘괴물’ 과학자, 동료의 공을 숨기고 명예를 가로챈 ‘얌체’ 과학자, 특허권 선등록 같은 돈의 유혹에 흔들려 불공정 경쟁을 벌인 ‘반칙’ 과학자들의 사례가 차고 넘친다.

뇌과학에는 더욱 엄격한 윤리가 요구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아(自我) 인식은 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과학은 하기 어렵다. 인간을 동물처럼 실험실에서 다룰 순 없다. 뇌 신경생물학의 해부학적 실험은 물론, 뇌의 기능을 증강하거나 중독을 치료하는 뇌공학적 기술도 어디까지 허용되느냐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나라 과학계는 2017년 뇌신경윤리연구회를 처음 만들었다. ‘ELSI(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로 요약되는 생명과학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연관성 연구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뇌 윤리를 다루는 국제기구로는 국제뇌주도권(IBI), 세계신경윤리정상회의(GNS) 등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7년 ‘뇌신경기술과 사회’ 보고서를 펴내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뇌 윤리의 질문=치매·파킨슨병 등 뇌 질환 연구의 모델은 선진국이 앞서 정립하기 마련이다. 서구 의사들이 주로 백인을 대상으로 연구한 특정 실험 모델이 다른 인종·국가 간 충돌을 빚을 때 어떻게 하면 연구 결과를 왜곡 없이 해석할 수 있을까. 환자의 사생활 정보를 포함한 뇌의학 데이터를 국제 표준화할 때 어느 수준까지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것인가. 연구실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실험할 때 그 목적과 방법상의 가이드라인은? 뇌 자극 기술이 인간의 자유의지, 즉 인격적 변화를 초래한다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그리고 뇌과학이 투입될 곳과 그래선 안 될 곳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하는 것이다.

◇뇌기증(뇌은행)=뇌도 신체의 다른 장기처럼 기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80%를 넘는다. 게다가 사망 후 뇌를 기증할 의사가 있다는 비율은 30%도 채 안 된다. ‘뇌는 내 존재 자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한 탓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뇌 연구를 하기 매우 어렵다. 과학자들은 주로 쥐 같은 동물 실험을 하다가 실제 사람의 뇌에 적용하려 할 때는 신원미상의 변사자 등 극히 제한된 뇌 샘플로 연구를 해왔다. 충분한 뇌 조직을 활용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일도 많다. 2014년 설립된 뇌은행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현재 수백 명의 뇌와 혈액·뇌척수액 등 1000건이 넘는 뇌 자원이 기증돼 있다. 뇌 기증 희망 등록자만 약 1000명에 달한다. 정부는 제도와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성평등=과학계는 오랫동안 남성 왕국이었다. 여자는 수에 약하다는 고정관념과 소수의 이공계 진출자에 대한 차별로 인해 양성평등은 다른 직군보다 오히려 낙후돼 있었다.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염색체 발견의 공로를 가로챈 사건이다.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모리스 윌킨스 등 3명의 남성 노벨상(1962년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배후에 숨겨진 비운의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그 이름을 따 성평등상이 제정될 정도로 ‘여자라서 노벨상을 뺏긴’ 희생자로 새겨졌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 국제교육국위원회와 한국여성과학기술지원센터는 과학(STEM) 교육에서 ‘여자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과학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양용 접시에서 자라는 미니 뇌(Mini Brain)=연구 목적으로 세포 분열, 체세포 역분화(리프로그래밍) 등의 기법을 동원해 창조해낸 실험용 장기(臟器)를 오가노이드(organoid), 혹은 미니 장기라고 한다. 쥐 등 동물의 장기는 물론 사람의 심장, 콩팥, 심지어 뇌까지 실제 크기의 수십 분의 1 사이즈로 ‘제작’할 수 있다. 살아있는 장기를 몸 외부에서 직접 관찰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오가노이드는 생명현상 연구, 약물 부작용 실험 등에 요긴하게 쓰인다. 그런데 최근 성인 피부세포를 역분화시켜 만든 미니 뇌에서 미약한 뇌파 활동이 감지되다가 10개월 후 새 뉴런 연결이 이뤄지면서 인간 뇌와 유사한 규칙성까지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아 살해와 같은 윤리적 의문이 제기됐다. 미니 뇌를 ‘살아있다’고 판정할 생명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윤리적 합의점을 요구하고 있다. <끝>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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