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도 무모함도 아니다"..코로나 속에서 아이를 잘 키우는 일
'코로나 시대에 아이 키우기'가 주는 조언과 위안
2020년 1월, 중국에서 정체불명의 호흡기 질환이 퍼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확산세나 당시 중국 정부의 대응으로 볼 때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은 필연적인 사태로 여겨졌다. 개인적으로 대응할 방법은 없었지만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스 때는 학생이어서, 신종플루 때는 막 레지던트를 시작하던 때라 잘 모르고 지나가긴 했다. 메르스 때는 근무하던 병원 근처에서 확진 환자가 나와서,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고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여섯살 딸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 내가 아픈 것은 그렇다 치지만,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맞벌이이고 한 쪽이 일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탓에, 아이는 계속 유치원에 나가야 했다. 또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처가에 자주, 사실 거의 매일 아이가 방문하는 상태였다.
2020년 2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아직 알지 못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매번 음악회를 열었다. 아이들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는데, 코로나19를 우려한 유치원은 방문객을 제한하기로 했다. 아직, 지역사회 감염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의 모습을 같이 보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못내 툴툴거렸다.
2020년 3월, 대구에서 급격한 확산이 있었고 이탈리아, 뉴욕의 고통을 전해 들었다. 중국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코로나19 감염의 진행과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2020년을 통째로 사로잡을 것을 알게 되었던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진료하는 의료인이자 의료윤리학자로서 코로나19가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숙고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초·중·고등학교가 개학을 늦추었지만, 유치원은 긴급돌봄을 운영했기 때문에 당장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친구들이 오지 않아서 재미없다고 투정을 부렸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미안했다. 주어진 것은 한 줌의 정보뿐이었다.
여러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도 되는 걸까? 부모가 직접 교육을 챙길 수 없는 우리 같은 경우, 생활은 어떻게 바꿔야 하지? 학원은 다녀도 되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호흡기 질환이 아닌 다른 질병의 경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도 되나? 아이가 코로나19를 매개할 수도 있다면, 어르신과 접촉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당장 아이는 키워야 하고, 질문들의 답은 직접 부딪히면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020년이 지났고,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 속에서 삶이 이어지다 보니 코로나19를 대응하는 방식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의견 충돌로 이어진다.
예컨대, 학교를 열 것인가에 관하여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아동의 감염 기회와 증상을 따졌을 때 위험도가 낮으므로 초·중학교는 괜찮다고 말한다. 비대면 교육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를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모두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누군가는 아이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전파할 수 있으므로 학교를 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아이들의 코로나19 감염 자체를 염려한다.
공론장에서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텔레비전에서 열리는 토론의 장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자녀 양육을 직접 챙기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나는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가정과 양육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이를 돌보는데 꽤 신경을 쓰는 나와 같은 처지의 남성을 만나기 쉽지 않은 탓이다. 한때 인터넷이 공론의 장을 만들 것이라 많은 사람이 기대했지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오히려 정파와 계층, 세대에서 폐쇄적인 소통을 강화한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는 부모가 직접 따져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따져볼 것인가? 여기에 이를 위한 설명서가 있다. 미국 소아청소년과 의사 켈리 프레이딘이 쓴 ‘코로나 시대에 아이 키우기’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프레이딘은 내가 떠올렸던 여러 질문에 관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고민과 자신의 답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에 관한 프레이딘의 설명을 들어보자.
어떤 병에 대처하려면 그 병이 몸에 끼칠 위해의 정도와 사망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수많은 질병이 사망의 위험을 제시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런 병 모두를 염려하며 살진 않았다. 사실, 모든 병을 다 염려하면서 사는 것을 우리는 건강염려증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의 경우, 감염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주로 성인, 더 좁히면 고령층과 심장 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다. 물론, 이 범주 밖에서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드문 경우이므로 일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완전히 염두에 두진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의 감염 확률과 사망 가능성은 어떨까? “중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의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어린이는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중 2%에 불과하다. 사망자 수는 0.2% 미만이다.” (44쪽)
꽤 안심되는 수치지만, 완벽한 답은 아니다. 걸릴 가능성이 작은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픈 건 괜찮지만 아이가 아프면 안 되기에, 여전히 걱정은 남는다. 그렇다면,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얼마일까? 다시, 프레이딘의 말을 들어보자. “자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입원할 가능성은 20%의 6% 즉 1.2%다. … 자녀가 비교적 건강하고 만성적인 기저질환이 없다면 코로나19로 입원할 가능성은 0.3%로 줄어든다.” (47쪽)
0.3%, 즉 천명 중에 세명이라면 다른 질병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 관해선 완전히 안심해도 되는 것 아닐까? 예컨대, 외국의 백신 반대론자들이 수두 파티를 벌여 빨리 수두를 앓고 지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코로나19도 빨리 앓고 지나가는 것은 어떤가? 프레이딘은 이를 부정하며 강력히 경고한다. “절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불필요한 위험을 떠안을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면역이 생긴다는 보장도 없고, 이익이 입증된 것도 아니다. 감염된 어린이는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다.” (50쪽)
정리하면 이렇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아이가 큰 위해를 입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보호한다고 꽁꽁 싸맬 필요도 없지만,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시킬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위험과 이득을 잘 달아보고,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태도다.
코로나19와 양육: 두 개의 짐을 함께 지는 일에 관해
프레이딘과 책을 번역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강병철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코로나19 앞에서 아이를 기르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도, 무모함도 아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해결책을 맹신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우리 모두 경험해보지 않은 사태이므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를테면, 기저질환을 앓는 아이는 최대한 노출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노출을 피하려다 아이가 극단적인 고립 상태에 처하는 것이 더 해로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비대면 교육은 현재 상황에서 필수 불가결한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비대면 교육으로 학습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으며, 아이의 온라인 활동을 감독하여 보호해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분명 아이에게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우리는 코로나19 속 양육이라는 강렬한 폭풍을 지나가야 한다. 이 도착 지점이 보이지 않는 혼돈 속에서, 손에 들린 지도 하나는 큰 위로와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 키우기’가 그런 지도 역할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프레이딘의 말처럼, 어떤 큰 유행병도 결국 지나가고, 삶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나와 가족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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