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더불어민주당이 또 다시 헌정사 초유의 사건을 창출했다. 바로 '법관 탄핵'이다. 민주당은 이를 성역 파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2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성역과 같이 생각돼 온 법관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다. 부당한 재판개입 행위를 한 임성근 부장판사 개인에 대한 탄핵이 사법부 길들이기라면 어떤 탄핵이 정당한 사법부 견제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내 편 위해 악선례 마다않는 정권
법관 탄핵이 권력형 비리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판사들이 '자기검열'을 할 수 있어서다.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 처리도 이를 노린 측면이 강하다. 권력형 비리 수사가 재판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탄핵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헌정사 초유의 사태'가 유독 많이 발생했다. 검찰총장 징계와 감찰은 물론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 지휘권을 여러 차례 행사한 것도 전례가 없다. 검찰총장을 징계하려는 움직임 역시 검사들의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권력형 비리 수사를 생각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19일 "법이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동일한 기준과 잣대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라임자산운용 사건 수사와 검찰총장 가족 관련 수사를 지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윤 총장에 대한 방문조사를 시도한 지난해 11월 19일 법무부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수사나 비위 감찰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이 있을 수 없으므로 법무부는 향후에도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의 '성역 초토화'가 완전히 달성되지는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이 지난해 12월 24일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 결정의 효력을 정지했기 때문이다. 낙관은 이르다. 12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에 벌금 5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두 재판을 계기로 여당에서 '적폐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법관 탄핵 추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 편 지키기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0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임명했다. 정의당조차 임명을 반대한 인사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2월 8일 "국세청에 신고한 월 생활비가 60만 원이라고 한다. 근검절약을 이유로 밝혔는데 이거 실화가 맞느냐"며 "황희 정승도 믿지 못할 자린고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황 장관은 야당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한 29번째 사례다. 이명박(17회), 박근혜(10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3회)과 비교하기조차 민망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무용지물이 됐다. 향후 문재인 정부의 전례는 중요한 판단 준거로 활용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도 필요치 않을 지경이다. 대통령이 선택하면 그것으로 끝인 독재정권 시절의 인사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선거 위해 악선례 마다않는 여당
당헌까지 개정하며 서울·부산시장 후보자를 공천하기로 한 것도 악선례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의 성추행 탓에 치러진다. 민주당은 정당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 이런 경우 공천하지 않도록 구 당헌 96조 2항에 명시했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도입한 규정이다.정작 문제가 되자 전 당원 투표 절차를 거쳐 당헌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투표 참여율이 26.4%에 그치자 '전 당원 여론조사'였다면서 편법 해석까지 하며 통과시켰다. 당내에서 민주적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셈이다.
당규 제10호도 개정했다. '공천관리위원회는 각급 공직에 출마하기 위해 본인의 임기를 4분의 3 이상 마치지 않은 선출직 공직자가 출마해 보궐선거를 유발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당헌 제100조 제1항에 따라 심사결과의 100분의 25를 감산한다'는 조항에 '다만 광역단체장선거에 출마하려는 경우에는 감산하지 아니한다'는 예외사항을 추가했다. 이로써 현역 국회의원의 출마가 용이해졌다. 당규 개정은 지난해 8월 이뤄졌다. 그때부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를 공천하려고 마음먹은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당헌·당규 개정으로 책임정치는 물 건너갔다. 정치혁신의 후퇴다.
개정 선거법의 허점을 활용해 편법으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것도 악선례다. 개정 선거법 취지는 사표 최소화와 소수정당 진입장벽 낮추기다.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대표성 강화도 추구했지만 이는 민주당이 무산시켰다. 민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석 확보를 위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는 어이없는 일을 벌였다.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비례위성정당을 해산했다. '떴다방' 같은 편법이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만든 중대 정치개혁 조치 하나를 이처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역대급' 국가채무 증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40%가 깨졌다"며 2016년 예산안을 맹비난했다.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국가채무비율은 50%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런 선례를 만들어놓은 탓에 향후 어떤 정부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 국면을 넘기면 대규모 증세로 국가채무를 되갚아야 하지만 '표 떨어지는' 정책을 펼치고 싶은 대통령이나 여당은 없다. 전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 보수 정당 역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인기 영합적 정책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변제 책임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이어질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8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113개 사업에 대한 예타면제가 이뤄졌다. 규모가 무려 95조4281억 원에 달한다. 이명박(90개 사업·61조1378억 원), 박근혜 정부(94개 사업·24조9994억 원)와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코로나19 때문만도 아니다.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사업 역시 예타면제를 할 예정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예타면제 규모는 100조 원을 넘길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면제를 이렇게 늘려놓았으니 보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봐야 한다.
이렇듯 악선례를 차곡차곡 쌓은 결과 민주당이 피와 땀으로 일군 일련의 개혁 성과와 원칙은 상당 부분 붕괴했다. 지금껏 살핀 7가지가 전부도 아니다. 거의 전 영역에서 붕괴가 진행 중이다. 후과는 참혹할 것이다. 향후 더 극악한 정권이 들어서 악선례를 근거로 적폐를 쌓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코로나19보다 문재인 정부의 후과가 더 우려스러운 이유다.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Copyright © 주간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