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행복한 엄마만하면 안 되나요?
처음 선생님이 되고, 특수학교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인 햇병아리 같은 선생님이었습니다. 학부모 상담 기간이 다가와 옆 반 경력 선생님에게 도대체 무슨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슬쩍 여쭤봤습니다.
처음 들은 답변 중에 인상 깊은 것은 "운전면허를 안 딴 엄마가 있으면 면허부터 따라고 해야지"였습니다. 도대체 왜? 장애아의 부모는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고 운전면허부터 따야 하는 건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치료실 데리고 다니고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걸 알았으니 얼마나 바빠지겠어. 좋다는 치료실 데리고 다니려면 이제 아이 스케줄 쫒아가기도 힘들 거니까, 면허부터 있어야지." 오랜 경력에서 나온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순간, 선배 선생님의 저 말이 옳은지 마음속으로 되새겨 고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속상한 일. 누군가 나에게 저런 제안을 했다면, 불쾌했을 듯 했습니다. 더구나, 운전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엄마라면 더 불편했을 듯합니다.
◇ 장애아 엄마에게 들려오는 주제넘은 충고들
치료실을 전전하기 시작하면, 이보다 더 한 조언들을 듣습니다. '자폐'라는 용어가 처음 쓰였을 법한 시대에 나온 '냉장고 엄마'라는 단어가 아직 장애 아이를 키우는 우리 사회 저변에 먼지처럼 흩뿌려져 있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아이가 불안이라도 높으면 '아이 불안이 곧 엄마의 불안'이라는 말도 쉽게 사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 그런 경우들도 대다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들도 종종 만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가진 아이의 정서발달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면, 더 많은 사회적 압박과 만납니다. 엄마가 바빠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주변의 주제넘은 충고 이전에도 엄마 스스로가 괴롭고 아프게 자책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치료실에 다니기 시작하면 숙제가 밀려납니다. 처음 치료실에 근무하고 놀란 것은 부모님들이 "선생님, 숙제 없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봐 왔던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옆 반의 언어치료사도 그날 수업활동을 종합장 같은 종이에 붙여 가정학습용으로 따로 준비해주고 있었고, 감각통합선생님 역시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놀이, 신체 활동에 대해 안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 주 뒤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숙제를 확인하듯 가정에서 아이가 한 숙제를 선생님에게 보고하고 검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빠서 혹은 적성에 맞지 않아 해가지 못한 학부모는 역시, 치료사에게 한 소리를 듣습니다.
"어머니가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늘지 않아요."
이 말은 아이의 느림이, 아이의 성장이 마치 엄마의 탓인 것처럼 들리기 충분합니다. 속상한 일입니다. 속상해 하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이의 장애가 내 탓 인양 열심을 내 하루하루를 채우는 부모들조차, 그들의 표정이 마냥 행복해보이지만은 않습니다.
◇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육아의 즐거움을 선뜻 느끼기 힘든 이유는 아마 이런 장애아를 둔 부모의 역할이 비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역할보다 과중한 탓일 겁니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의 첫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힘들 때도 물론 많이 있지만, 힘듦을 잊게 만드는 것 또한 육아의 즐거움일겁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육아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아 부모든, 비장애아 부모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조부모와 함께 아이의 엄마가 상담을 함께 왔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내내 "일하고 있어서, 사실 아이의 양육을 제가 담당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에 대해 할머니만큼 잘 알지는 못해요"라는 이야기를 매우 부끄러워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부모인데, 자식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려니 무책임해 보였나봅니다.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는 게 적성에 맞으세요?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적성에 맞으세요?"
어머니는 민망해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이를 보는 건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에요."
맞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으면 좋겠지만,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이의 앙앙대는 울음소리가 귀엽게 들리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귓가에 모기소리처럼 내내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와 말놀이 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알아듣지 못할 말에 대꾸해주면서 점점 지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모성에 대한 기대와 역할이 너무 과한 듯합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아이의 엄마가 묻습니다.
"그냥, 엄마만하세요. 아이를 잘 돌봐줄 조부모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냥 퇴근하면 엄마만하고, 계속 일하세요. 그만두지 마시구요. 깨끗하게 입히고 잘 먹이는 것, 틈틈이 사랑해주는 것만 하셔도 충분하답니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10여 년 전, 어린이집 개원 초에도 부모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하시라고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러 다니고, 일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하시라고 말입니다. 다만, 가만히 지켜보니 오전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초등학생이 되면 더 이상 엄마의 시간은 없을 것 같으니,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또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2021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보내는 일하는 엄마와 2학기 상담을 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엄마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일하는 엄마 대 일하는 엄마로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 "내 삶을 그대로 살아내는 것은 당연히 나의 권리일 뿐"
내 삶을 그대로 살아내는 것은 당연히 나의 권리일 뿐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적성에 맞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해 일할 필요나 직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다면 전업주부만 해도 상관이 없겠지요. 이 역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너 때문에' 엄마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괴로운 일입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도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 안내해드렸습니다. 아이는 최근 활동보조원과 등·하원 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비난을 멈추고, 비장애부모에게 과도한 부모의 역할 강요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배워야 할 것 중 중요한 하나는, 자신의 삶을 멋있게 살아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삶의 태도'를 배우는 일입니다. 그래야 훗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부모의 삶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말 몇 마디나 걸음마가 전부가 아니라, 그것보다 중요한 '삶의 태도'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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