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도 지옥도 아닌 남인도의 단상들

방태현 2021. 2.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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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어디론가 돌아가는 사람들. 남인도 여행에서 탔던 버스들은 항상 만원이었다

남인도로 떠난 네 번째 인도 여행에서 깨달았다.
최고가 최악이 되고 최악이 최고가 되는 이곳,
인도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음을.

#1 마말라푸람
Māmallapuram
딜럭스 버스

작은 어촌인 마말라푸람(M?mallapuram)으로 가는 버스 안. 금방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버스는 안팎으로 심하게 낡았고, 하차를 알리는 벨도 존재하지 않는다. 승하차의 경계가 없는 두 개의 문도 열린 채로 버스는 출발했다. 앞뒤로 멘 배낭을 빈 좌석에 내려놓으니 베이지색 옷을 입은 사내가 아무 말 없이 접근했다. 왼쪽 손가락 사이사이에 부채처럼 지폐를 꽂고 옆구리에 파우치를 낀 모습으로 보아 요금을 받는 사내였다. “마말라푸람”이라고 말하며 200루피(한화 약 3,300원)를 건네자 영수증과 함께 155루피가 돌아왔다.

마말라푸람까지 2시간을 달리는데 버스 요금은 한화로 750원 남짓. 심지어 버스의 전면 창문에는 하얀 바탕에 파란 글씨로 ‘딜럭스’라고 써 붙여져 있다. 사내는 뒷문 옆 좌석에 기대어 서서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정류장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타고 내리는 사람이 뜸해졌지만 그의 목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는 여전했다. 목소리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호루라기 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머리가 지끈했다. 계속 듣다 보니 하차를 알릴 때는 호루라기를 한 번, 다시 버스가 출발할 때는 두 번 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인의 사리(Sari)에 새겨진 꽃무늬가 해져 버린 버스 좌석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아니, 묘하게도 어울린다

왼쪽 도로 가장자리에 ‘마말라푸람 25km’라는 표지판을 발견한 찰나. 버스는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호루라기 소리를 한 번 듣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난 뒤 여행 가이드북을 폈다. 그렇게 한 번, 한 번, 또 한 번이 모여서 곧 마말라푸람에 도착하겠지. 옆 좌석에 놓인 배낭에 몸을 기대어 잠을 청했다. 빨라진 속도 덕에 이전보다 바람은 조금 더 시원해졌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사내의 목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도 금세 아득해졌다.

남인도에서는 기차보다 버스를 이용한 이동이 많았다

#2 깐야꾸마리
Kanyakumari
이 미친 인도 여행

인도 최남단 깐야꾸마리(Kanyakumari)로 가는 야간 기차를 예매했다. 에어컨 클래스는 이틀치 숙박비와 맞먹는 가격이라 엄두가 나지 않아 슬리퍼 클래스 표를 샀다. 출발은 새벽 1시. 숙소에서 5분 정도 걸어 도착한 역에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틈에 배낭을 내려놓고 열차의 플랫폼 넘버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열차번호 12633-플랫폼 넘버3’. 숫자가 전광판에 나타나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열차는 (당연히) 15분 정도 연착했다. 역으로 들어서는 열차가 속도를 줄이자 세컨드 클래스에 살을 부대끼고 있는 인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이 없어 열차의 문턱에까지 걸터앉은 사람들은 뜻밖에도 즐거워 보였다. 어디론가 떠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디론가 돌아가기 때문일까. 생각하던 찰나 열차는 멈췄고 나는 슬리퍼 클래스 4코치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 보지 않고 인도 여행을 말할 수 있을까. 인도 최남단 깐야꾸마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내 좌석은 로워(아래), 미들(중간), 어퍼(위) 중 어퍼였다. 내 키보다 높은 그곳에 가까스로 배낭을 올리고 몸을 구겨 넣어 눕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또 하고 있지.’ 분명 잊지 못할 기억이었고 그래서 잊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전 인도 여행에서 역시 지금처럼 어퍼 칸에 몸을 뉘이며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원하지도 않으면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사방에서 울리는 코 고는 소리, 밤을 잊은 사람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지옥이 있다면 이곳과 닮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지. 있는 힘, 없는 힘을 모아 목 베개에 바람을 넣고 목에 끼워 비스듬히 누웠다. ‘나는 왜 이 짓을 또 하고 있을까. 깐야꾸마리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까.’ 자문은 계속됐지만 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은 새벽 2시1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열차에 속도가 붙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청하는 것, 열차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혹 꿈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가까스로 눈을 붙였다.

깐야꾸마리역. 자신의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엄마를 따라 가는 소녀의 모습에 웃음이 지어졌다

뒤척이다 잠이 들고 깨기를 여러 번. 새벽 5시경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배낭을 왼편 로워 칸에 옮기고 오른편 로워 칸에 누우니 한결 편했다. 마음도 좀 편안해졌는지 그제야 허기가 몰아쳤다. 이내 먹을 것을 꺼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창밖에는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늘을, 구름을, 산을,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보통이지만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그것들에, 답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이 미친 인도 여행을 내가 왜, 네 번이나 하고 있는지를.

향신료 가게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안에서 곰 인형이 인사를 건넸다

#3 알라뿌자
Alappuzha

동요하지 않는 여행

길었지만 깊은 시간이었다. 꼴람(Kollam)에서 알라뿌자(Alappuzha)까지는 수로를 따라 보트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로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배로는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문득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Copacabana)에서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가로질러 태양의 섬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바다를 닮은 호수는 육안으로는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가늠하기 어려운 인도 케랄라(Kerala)주의 수로(900km라는 숫자조차 가늠하기 어렵다)는 ‘Backwaters’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람들 뒤에서 잔잔히 물결치고 있었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케랄라 수로의 야자수가 보트를 향해 손짓했다
과거 쌀 운반용으로 사용하던 배를 숙소로 개조한 ‘하우스 보트’는 수로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물길은 바다와 같이 넓다가도 금세 호수와 같이 좁아졌다. 보트가 식물들을 밀어내며 나아갈 때마다 녹색 내음이 코끝으로 올라왔다. 열대 우림 사이로 퍼져 있는 이 물길은 인도 사람들에게는 삶의 길이자 이방인에겐 여행의 길이다. 삶과 여행이 만난 물길 위에서 나의 길을 가늠했다. ‘나의 길도 때로는 넓어지고 때로는 좁아지겠지. 그때마다 이 수로의 잔잔한 물결처럼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동요하지 않는 여행. 그것이야말로 불행에서 여행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알라뿌자로 가는 수로 위에서 깨달았다.

잔잔한 물결처럼 동요하지 않는 여행으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걸어 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4 빨로렘
Palolem
단단한 모래 위에서

빨로렘(Palolem)의 모래는 유난히 단단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간 몸을 지탱해 주기에 충분했다. 물속에서도 마치 물 밖에 서 있는 듯 꽤나 편안해서 오랫동안 물에 몸을 맡기곤 했다. 그러다 처벅처벅 걸어 나와 무지갯빛 파라솔 아래 선 베드에 누워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었다. 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으니 지난 50일, 인도에서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때론 욕했으며, 행복했고 그 행복에 눈물겨워 때로는 미소 지었다. 인도에 오기 전, 내 마음은 바다의 물결처럼 조금은 넘실거렸고 정처 없이 부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네 번째 인도 여행을 통해 내 마음은 바닷물 속 모래처럼 조금은 단단해졌고 덕분에 오롯해졌다. 남은 인생이라는 여정을 여행하듯 살 수 있을 거라는, 작지만 단단한 확신이 들었다.

고아(Goa)주 빨로렘 해변의 노을. 인도에 있지만 인도를 그리워하는 감정에 스며들었다

최고의 날을 보낸 뒤에는 어김없이 최악의 날이 찾아왔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다 결국 제풀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다시 털고 일어나 앞을 바라보면 보란 듯이 최고의 날이 기다리고 있었던. 그렇게 최고가 최악이 되고 최악이 최고가 되는 일의 반복 속에 인도의 시간은 흘렀다. 반추해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 인도는 항상 나름의 해답을 내주었다. 그래서 가슴 한 켠이 아려올 때면, 언젠가는 약으로 쓰일 개똥 같은 인도 여행이 그리워질 것 같다. 그을렸던 피부가 다시 제 색을 찾게 될 때쯤, 인도보다도 혼란스러운 때를 만나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방태현(방멘)은 여행하듯 산책하고 산책하듯 여행한다. 여행 관련 독립출판물을 창작하는 ‘출판사 방’을 운영 중이다. <출근 대신, 여행>,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불행에서 여행으로, 남인도로 인도하다>를 펴냈다. 인스타그램 bangmenphoto

글ㆍ사진 방태현(방멘)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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