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 미국인들이 다시 여행하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해용 기자 2021. 2. 17. 08: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는 9000억달러(약 990조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경기 부양책이 실행된다. 또 바이든 미 대통령은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의 추가 경기 부양책도 추진 중이다. 미국 민주당은 예산조정권을 발동해 상원 가결에 필요한 60명이 아니라 과반(51명) 찬성만으로 추가 부양책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어서 통과가 거의 확실한 상태다.

한국 정부의 재난지원금도 국내 금융,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의 지원금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증시와 기업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워낙 많은 자금이 풀리기 때문에 돈의 힘이 어디로 뻗어나갈지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소호거리에 있는 치프리아니 다운타운 레스토랑에서 시민들이 음식을 먹고 있다. / 블룸버그

미국인들은 이번 지원금을 어디에 쓸까?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인들이 지난해 받은 지원금은 재화에 주로 썼지만, 올해 받을 지원금은 재화보다는 서비스에 더 많이 쓸 것으로 내다봤다. 재화는 텔레비전, 냉장고, 가구 등 상품을 말하고 서비스는 여행, 숙박, 스포츠, 의료 등이다. 미국의 소비는 40%가 재화이고 60%가 서비스다.

미국인들이 작년에 지급됐던 지원금을 주로 상품(재화) 소비에 사용한 것은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주(州)별로 잦은 봉쇄 조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여행이나 레저·스포츠 등 이동이 가능해야 소비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동이 불가능해 서비스를 소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 미국 상무부의 미국인 개인소비지출(PCE‧Personal Consumption Expenditures)을 보면 지난해 12월 미국인의 내구재 지출 규모는 1994조2550만달러로 코로나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선언된 지난해 3월의 지출 규모인 1606조7600만달러 보다 오히려 늘었다. 코로나가 확산하던 지난해에 내구재 소비가 증가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레저에 사용된 개인소비지출은 1경7953조달러(5.01%‧35경7774조달러→33경9821조달러)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매일 30만명씩 늘었던 확진자 수는 이제 10만명 이하로 줄었고 백신 접종도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면서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어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금이 서비스 산업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자료 = 하이투자증권, 그래픽 = 이민경

이런 예측대로 미국인들이 서비스 소비를 실제 늘리기 시작하면 미국 주식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여행이나 레저, 숙박에 관련된 기업 주가가 상승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에 따르면 하와이안항공의 주가는 최근 6개월(2020년 8월 12일~2021년 2월 12일 기준) 동안 64.5%(8.89달러)급등했다. 유나이티드에어라인(20.7%), 제트블루(41.6%), 사우스웨스트(45.6%), 아메리칸항공(27.5%) 등도 줄줄이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JW메리어트호텔 등을 자회사로 가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34.8%)과 컴포트 인 등을 보유한 초이스 호텔 인터내셔널(16.6%), 힐튼(30.5%) 등 미국 호텔 기업들의 주가도 오르고 있다.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좋은 투자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대한항공(003490)주식을 사는 대신 사우스웨스트나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을, 하나투어(039130)에 투자하는 대신 힐튼에 투자하는 것도 고민해 볼 일이 된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의 통큰 지원은 미국 호텔이나 항공주만 올려놓는데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학개미의 행복한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국내 증권 시장에 큰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금융투자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의 중심에는 미국의 고용 상황이 있다. 서비스 산업은 미국의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분야로 서비스 소비가 늘어날 경우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명의 근로자들이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미국 서비스 소비가 코로나 확산 이전 상태로 회복될 경우 레져, 숙박, 교육, 의료 등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다 실직했던 500만명가량이 직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고용지표가 개선되고 실업이 줄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일어나게 된다. 또 미국 채권 투자자들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긴축(금리 인상)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급하게 내다 팔 가능성도 높아진다. 연준이 실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금리 인상 후 새로 발행되는 채권이 기존 채권보다 높은 금리로 발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채권에 투자하는 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미리 기존에 보유한 채권을 처분하는 것이다.

기존 채권이 무더기로 시장에 풀리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고 채권 금리(채권 수익률·시장 금리)는 상승한다. 미국인들이 여행이나 레저 등 서비스 소비를 늘리면 미국의 시장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미국 시장 금리 상승에 대해 "전 세계 시장의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국 채권 금리가 오른다는 의미는 미국 채권에 투자할 때 더 높은 이자가 생기고 수익률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한국 등 미국 이외의 국가에 주식이나 채권을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미국이라는 좀 더 안정적이면서도 괜찮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곳이 투자처의 선택지로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 수십년 동안 밟지 못했던 3000지수를 돌파했다. 코로나가 극복될 것을 기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선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미국의 코로나 극복이 눈앞에 다가온 이제는 미국 금리 상승으로 인한 외국인 투자금 유출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정말 미국인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옷이나 신발 등 재화를 사는 대신 여행이나 캠핑을 가고 레저 스포츠를 즐길까? 끝없이 펼쳐지는 나비효과(한쪽의 작은 변화가 다른 쪽의 큰 변화를 이끄는 효과)가 계속되는 증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자자들이 주의 깊게 봐야 할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