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본토 70%가 얼었다.. 기록적 한파에 정유시설, 백신접종도 '스톱'

허경주 2021. 2. 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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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냉기 품은 극 소용돌이 남하 탓
서부 텍사스산 원유값 1% 상승
미국 내 백신 접종소도 일시 폐쇄
16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전력 시설 앞에 전기 서비스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 한파로 텍사스주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면서 430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포트워스=AFP 연합뉴스

미국이 기록적인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 폭풍이 몰고 온 맹추위에 미국 본토 4분의3이 눈에 뒤덮였고, 주민 2억명에게 경보가 발령됐다. 평소 눈 구경을 하기 힘든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아칸소 등 남부 지방까지 한파가 덮치면서 경제마저 얼어붙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스케줄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한파는 온난화 따른 극지방 소용돌이 탓

미 CNN방송은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 분석 자료를 인용, 본토(하와이ㆍ알래스카 제외) 48개주(州) 전체 면적 가운데 73%가 눈에 쌓였다고 보도했다. 2003년 이후 가장 넓은 지역에 눈이 내린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은 지역은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3개주에 불과했다. 기상청은 맹추위가 오는 2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주민 2억명에게 겨울폭풍 경보를 발령했다. 텍사스 등 7개주는 비상사태를, 캔자스주는 재난 상황을 선포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미국 500여곳에서 최저 기온 기록이 깨졌다는 게 일간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콜로라도주 유마에선 섭씨 영하 41도, 캔자스주 노턴에서는 영하 31도를 찍는 등 살인적 강추위를 기록했고, 텍사스와 아칸소 등 미 남부의 이른바 ‘딥사우스(Deep South)’ 지역에도 혹한이 엄습했다. 최소 15명이 숨지고 수백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는게 외신의 설명이다.

한파는 발전 시설까지 멈춰 세우면서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했다. 텍사스, 오리건,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등 18개주 550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텍사스주가 430만 가구로 피해가 가장 컸고, 오리건, 오클라호마, 루지지애나,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에서도 각각 10만 가구 이상이 정전 피해를 봤다. 텍사스주 애빌린에서는 전력 차단으로 수도 공급마저 끊겨 12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었다.

이번 혹한은 극지방 소용돌이 영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덩어리인 극 소용돌이는 평소 제트기류 때문에 북극에 갇혀있는데, 기후 변화에 따른 온난화로 제트 기류가 약해지자 냉기를 품은 극 소용돌이가 남하하면서 미국 전역에 한파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기상학자 브랜든 밀러는 “북극이 지구 나머지 지역보다 두 배 빨리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6일 미국 휴스턴 조지부시 인터컨티넨탈 공항에서 직원들이 비행기에 붙은 얼음조각 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정유시설 가동 중단으로 원유값↑

한파는 미 경제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대형 유통체인 월마트는 한파로 500개 이상의 점포를 폐쇄했다. 월마트는 성명에서 “직원과 고객의 안전을 위해 매장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제조업체 GM은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생산하는 테네시, 켄터키, 인디애나, 텍사스주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포드도 픽업 트럭 등을 조립하는 캔자스시티 공장 문을 닫았다. 배송업체 페덱스 역시 한파로 일부 도시에서 물품 배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기 발도 묶였다.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이날 2,597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기상학자 타일러 몰딘은 “이번 한파는 올해 들어 첫 10억달러(1조1,020억원) 규모 기상재난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기록적인 폭설은 미국 에너지 산업도 혼란에 빠뜨렸다. 미 최대 유정이 위치한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 일부 지역에서는 지난 12일부터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정유시설 가동도 멈춰선 상태다. 원유 컨설팅업체 리스태드에너지는 지난 5일간 이 지역에서 생산이 중단된 원유가 50만~12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텍사스주에 위치한 엑손모빌, 로얄더치셀 등 대형 석유기업의 정유 시설도 문을 닫았다. 로이터통신은 영하의 날씨로 미국 일 평균 정제유 생산이 전체 하루 평균 정제량의 18%에 해당하는 330만배럴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영향으로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0.58달러) 오른 60.0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WTI가 종가 기준 배럴당 60달러선을 넘은 것은 작년 1월 이후 13개월만에 처음이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도 4월물 브렌트유가 배럴당 0.25% 오른 63.46달러에 거래 중이다.

16일 미 텍사스주 벤브룩에 위치한 주유소. 한파로 예정된 물량을 받지 못하면서 주유소에 연료가 바닥난 상태다. 벤브룩=EPA 연합뉴스

백신 접종도 차질

미국 코로나19 백신 접종 스케줄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텍사스주 해리스카운티의 경우 공중보건국 건물이 겨울폭풍으로 정전이 되면서 코로나19 백신 8,400개가 못 쓰게 될 상황에 놓였다. 일단 해당 카운티는 이를 지역 병원과 대학, 교도소 등에 배포한 상태다. 같은 주 댈러스카운티에서는 페어파크의 백신 접종소를 며칠간 문 닫기로 했고, 샌안토니오에서는 토요일까지 백신 예약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오클라호마주 보건국은 이번 주 내내 일부 백신 접종소의 운영 시간을 단축하거나 잠정 폐쇄하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미주리주 역시 극한 기후 때문에 금요일까지 모든 대규모 백신 접종소의 행사를 취소했다고 마이크 파슨 주지사가 밝혔다. 또 앤디 베셔 켄터키 주지사는 날씨 때문에 백신 접종이 일부 지연될 것 같다고 말했고, 테네시주에서는 일부 카운티가 문을 닫으면서 코로나19 검사와 백신 접종도 취소됐다. 앨라배마·미시시피주 역시 겨울폭풍의 여파로 일부 백신 접종이 지연되거나 백신 접종소가 문을 닫았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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