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논문 한편의 '나비효과'..IT·과학강국 꿈 이끌다

한고은 기자 2021. 2. 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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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캠퍼스 전경. /사진=카이스트
한국과학기술대학원 구상 보고서 표지 (정근모 박사가 기증한 KAIST 기록·KAIST 기록포탈) 2021.02.09 /뉴스1

# 196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과학기술 정책과정을 밟고 있던 정근모 박사(전 과학기술처 장관)는 ‘개발도상국이 과학입국이 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작성했다. 논문은 “모든 개도국은 과학기술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으며, 과학기술 교육은 경제성장의 추진력이 된다. 대학 설립은 후진국의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적혔다.

그는 평소 선진국으로 인재가 빠져나가면서 후진국 입장에서 과학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이 가로막힌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논문을 들고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존 한나 처장을 찾아가 한국 실정에 맞는 이공계 대학원 건립을 설득했다. 또 600만 달러 차관 지원을 약속 받았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60달러에 불과하던 약소국 한국이 과학 입국의 꿈을 품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과학한국 산실 카이스트 개교 50주년…7만 고급 과학인재 육성
카이스트(KAIST)가 설립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1971년 2월 서울 홍릉캠퍼스에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이 그 전신이다. 당시 미 국제개발처에서 사업 타당성을 조사하러 왔던 프레드릭 터만 조사단장은 보고서 마지막 장에 ‘미래의 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2000년이 되면 카이스트는 국제적 명성의 훌륭한 기술대학으로 성장해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봉장이자 국민의 자신감을 고양하고 자유로운 한국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돼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의 보고서는 결국 실현됐다.

정부 역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특별법을 만들어 국내외 유명 교수진을 초빙하고, 최신 연구장비 지원 등을 통해 연구환경을 조성했다. 과학 인재들의 군복무 제도를 정비하고, 교육비를 지원하면서 인재를 키워나갔다. 설립 초기 전기·전자·기계공학 연구에 매진하며 정부의 제2차,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했던 카이스트는 1990년대 들어 바이오, 컴퓨터, 반도체 기술 개발에 전념하며, 바이오·IT 벤처 붐의 싹을 틔웠다. 신소재·나노·로봇 기술 연구와 기술 산업화에 몰두했던 2000년대를 지나 이제는 바이오·IT 산업의 급성장을 목격하고 있다.

카이스트는 지난 50년 동안 박사 1만4418명을 포함 총 6만9388명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배출했다. 이들은 한국 산업계와 학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 산업분야 박사 인력의 약 25%, 국내 공과대학 교수의 약 20%가 카이스트 출신이다. 특히 카이스트는 창업가들의 산실로 꼽힌다. 누적 기준 1800여개의 카이스트 창업기업 중 1200여개가 생존, 연간 매출 총액은 약 13조6000억원이다. 연구 역량이 축적되면서 2000년대 초 100~200위권에 머물던 세계대학 순위도 30위권까지 올라왔다. 카이스트는 지난해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세계대학 순위에서 39위를 차지했다.

16일 대전 카이스트 본관에서 열린 카이스트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래 비전을 선포하고 있는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사진=카이스트
연구 역량면에서도 세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는 지난해 9월 카이스트의 50주년을 조명하며 카이스트의 인공지능 센서·바이오·차세대 반도체 등 현구 혁신을 집중 소개하는 특집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앞으로 50년 기업 가치 10조 넘는 스타트업 10개·특이점 교수 10명 배출하겠다”
새로운 50년을 바라보는 카이스트의 꿈은 ‘10·10·10 드림’으로 요약된다. 기술 추격자에 머물지 않고, 기술패권주의 시대의 선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16일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지난 반세기 과학기술이 국가 경제와 산업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살만한 나라로 만들었다면, 미래 50년의 기술은 정치, 경제, 사회, 보건, 안보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을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신 총장은 이를 위해 ‘10·10·10 드림’을 제시했다.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10명의 특이점 교수를 배출하고, 기업가치가 10조원을 넘는 10개의 데카콘 스타트업을 육성하자는 목표다. 또 전세계 10개국에 카이스트 교육 모델을 수출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카이스트 대전 본관에서 열린 카이스트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카이스트의 꿈이 곧 대한민국의 꿈”이었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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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은 기자 doremi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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