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82> 춘제 '코로나 이동제한령'에 농민공 귀향 못해..피해자는 남겨진 아이들
중국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의 메인뉴스 격인 ‘신원롄보’에서 설날 연휴 동안 유수아동이란 단어가 언급된 것은 딱 한 번이다. 지난 14일 저녁 “저장성 주지시, 장시성 쉰우현, 지린성 창춘시 주타이구도 확정된 제도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 유수아동에게 특별한 관심과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멘트가 기자가 확인한 유일한 ‘유수아동에 대한 복지’ 관련 언급이다. 신원롄보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선전도구이기 때문에 그만큼 유수아동 이슈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보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느니, 지난해 주요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 경제성장을 달성했느니 하며 중국이 설날 연휴 보내기에 떠들썩하지만 이러는 가운데 시선을 끌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발언권이 없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소외돼 있다.
바로 ‘유수아동(留守兒童)’ 들이다. 유수아동은 농촌에 남겨져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공식 명칭이다. 중국 자체의 규정에 따르면 유수아동은 부모 모두가 도시로 일하러 나가고 아이들(16세 미만)만 고향에서 조부모나 친척들 손에 있거나 아니면 아이들끼리 따로 사는 경우를 말한다. 중국 민정부는 지난 2018년 8월 현재 전국에 697만명의 유수아동이 있다고 집계한 바 있다. 이는 부모 양쪽이 모두 없는 경우로, 부친이나 모친 한쪽이 없는 경우는 훨씬 더 많다. 이후로 이 통계는 아직 갱신되지 않고 있다.
유수아동의 부모들이 바로 중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농민공이다. 농민공은 농촌 지역 출신이지만 도시에 와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공식적으로 농민공이라는 이름이 사용될 정도로 이들은 하나의 계층을 이루고 있다. 농민공이나 유수아동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중국 특색’의 존재다. 이는 중국 특유의 제도 때문이다.
유수아동이 올해, 특히 설날 연휴 기간에 문제가 된 것은 부모인 농민공들이 올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향에서 멀리 있는 농민공도 대부분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고향에 돌아간다. 바로 설날 연휴 때다. 중국은 설날 연휴가 긴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농민공의 귀향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농민공 부모들이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같이 생활하다가 연휴가 끝나고 헤어지는데 올해는 아예 만나지도 못했다.
중국 정부는 설날 연휴 기간 우려되는 코로나19 재확산 방지를 위해 농민공들의 귀향을 막았다. 이른바 ‘현지에서 설날 보내기(就地過年)’ 운동이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상 지역간의 이동제한령이다. 농촌으로 돌아간 농민공들이 격리를 당하고 또 도시복귀도 어렵게 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들은 일터가 있는 도시에서 그냥 주저앉았다. 농민공의 귀향이 금지된 것은 이른바 ‘개혁개방’으로 농민공이 생긴 이래 40여년만에 처음이다.
덕분에 중국은 일단 코로나19 확산을 진정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한다. 지난 14일 코로나19 지역사회 신규 확진자가 1명 나왔을 뿐 공식적으로 최근 열흘 가까이 ‘제로’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허베이성 스자좡발 코로나 폭탄은 일단 제거된 셈이다.
앞서 지난 5일 공개된 중국 사회과학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설날 연휴에 농민공 가운데 77.6%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는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이동 규제가 점점 강화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농민공의 발생은 중국의 경제개발 방식과 관계가 있다. 개혁개방 이후 동부연안을 중심으로 경제특구가 만들어지고 공장이 돌아가면서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게 됐다. 농촌의 유휴 노동력으로서 이를 충당하게 된 것은 당연한 논리다. 대략 서부 농촌지역의 농민들이 동부 도시지역으로 이동했는데 이들 농촌 출신들을 ‘농민공’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구분이다. 어느 나라나 공업화 과정에서의 도시 노동자들 대부분은 농촌 출신이다. 그래도 어느 나라도 이들을 별도의 이름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은 중국 특색의 호적제도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후커우(戶口)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호적과 비슷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중국어 발음으로 부르지 않으면 의미가 살지 않는다. 중국 후커우의 핵심은 도농 분리다. 1950년대 사회주의·집단화 과정에서 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도시 후커우와 농촌 후커우를 엄격히 분리해 고정시켰다. 즉 농촌 후커우 소지자는 도시에 와서도 도시사람이 될 수 없다는, 즉 도시 후커우를 획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1978년 이른바 개혁개방을 하면서도 이런 후커우 제도는 유지됐다. 소폭 수정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그대로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는데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일하고 살면서도 2등시민으로 대우 받게 된 것이다.
도시 후커우를 가지고 있어야 해당 도시에서 사회보장이나 주택구입, 교육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임금 면에서도 불리해졌다. 도시 후커우 소지자들이 꺼려하는 건설현장 등 중노동이나 청소·가정부 등 허드렛일을 맡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 됐다. 아이들을 도시에서 키울 능력도 안되고 데리고 와서도 교육시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은 그대로 농촌에 남게 됐다. 유수아동이 대거 등장한 이유다. 부모와 생이별한 수천만명의 유수아동이 생겼다.
농촌의 유수아동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된 것은 지난 2015년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다. 그해 6월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 비제라는 곳의 농촌 마을에서 보호자 없이 지내던 5살, 8살, 9살, 14살짜리 4남매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등학교 6학년 큰아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죽을 생각만 해왔다”고 쓴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농민공이었던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상 다투었고 당시에는 어머니가 아예 가출상태였다. 아버지마저 일하러 도시에 나간 상태에서 참변이 벌어진 것이다.
유수아동 문제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중앙정부와 해당 지방정부들은 모두 대책 마련에 허둥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아이들이 부모들 없이 장시간 지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베이징 소재 한 공익단체가 작성해 지난 1월 공개한 ‘2020년 유수아동 청서’에 이러한 실상이 잘 나타난다. 조사단이 8개 성·시를 대상으로 유수아동이 다니는 농촌학교 학생 3,501명을 조사한 결과 “유수아동의 성적이 일반 아동보다 낮았고 성취도도 약했다. 반면 정서는 불안해 남학생의 경우 과시형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에서 12%의 유수아동이 1년에 한 번도 부모를 모두 만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1년 동안 모친과 연락 자체를 안 한 사람도 5.5%나 됐다. 조사에 참여한 베이징사범대 과학전파·교육연구센터 부주임 리이페이는 “부모와의 접촉 제한이 아이들의 정서와 학습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사태를 분석했지만 여전히 일부만 맞을 뿐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책임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베이징의 한 교육 전문가는 “유수아동 문제는 바로 농민공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고 농민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의 시스템을 크게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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