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수익 보장해드립니다" 이 말 믿었다가는..
경기도 광명의 한 오피스텔 세입자인 이 모 씨는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1년 넘게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2,5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당 오피스텔 주변엔 이 씨처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나가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직접 집주인과 접촉해봤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인 박 모 씨, 자신 역시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고 취재진에 호소했습니다. 박 씨는 이 씨와 계약을 맺은 것 역시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계약을 맺은 주체는 임대 관리 회사라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 "월 수익 보장해드립니다"...'임대 관리 회사'가 뭐길래?
박 씨는 오피스텔 분양 초기 분양사의 권유로 한 임대 관리 회사 I 업체를 소개받았습니다. I 업체가 박 씨에게 제안한 조건은 파격적이었습니다. 계약을 맺는 순간부터 오피스텔을 책임지고 관리해주고 공실 여부와 관계없이 월세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업체 측이 위탁 계약 시 보증금 500만 원을 집주인에게 준다는 조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물론 업체 측이 가져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세입자가 내는 첫 달 월세에서 40만 원만을 공제해 간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선 일정 금액만 내면 꼬박꼬박 월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겁니다. 박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임대 업체에 위임장을 써줬습니다.
■ 집주인 도장까지 위조해 세입자와 '반전세' 계약
문제가 불거진 건 세입자 이 씨가 입주한 2018년 10월 이후였습니다. 이 씨는 오피스텔 주변 부동산으로부터 해당 매물을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매물을 위탁받은 I 업체가 이 씨에게 내건 조건은 보증금 2,500만 원에 월세 23만 원이었습니다. 주변 시세와 비교했을 때 높은 보증금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월세였기 때문에 이 씨는 계약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부동산이 직접 소개해준 매물이었고, I 업체 측이 집주인을 대리하고 있다는 위탁 계약서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이 씨는 I 업체를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I 업체는 집주인과도 소통이 끝났다고 설명하며 임대차 계약서에 집주인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세입자를 구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박 씨는 I 업체에 계약서 사본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업체 측은 차일피일 미루다 이듬해에야 박 씨에게 계약서를 보내줬습니다. 박 씨는 계약 조건이 업체 측이 기존에 제시했던 조건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명백한 이중 계약입니다. 계약서에 찍힌 박 씨의 도장 역시 업체 측이 임의로 만든 도장이었습니다.
■ 말뿐인 보증금 반환 각서인데..."순조롭게 진행중"(?)
뒤늦게 문제를 파악한 박 씨가 I 업체 측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세입자 이 씨의 보증금을 요구했지만, I 업체 측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업체 대표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3월까지 보증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썼지만, 해를 넘기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피해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KBS가 입수한 I 업체 내부 자료에 따르면 약속했던 돈을 제때 받지 못한 집주인만 80여 명에 달하는데, 이들 가운데는 수천만 원이 넘는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물어내야 하는 이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취재진은 추적 끝에 I 업체 대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업체 대표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지 않아 노동청에서 임금체불 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연관기사] [취재후] 반년째 월급 안 준 사장이 큰소리 칠 수 있는 이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14274
업체 대표는 취재진에 "일부는 보증금 반환이 진행이 됐다"며 "나머지 분들도 협의를 해서 정리를 할 예정으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증금을 대신 물어줘야 할 처지에 몰린 집주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 임대인은 "대표 말을 믿으면 안 된다. 돈을 처리하겠다며 설명회까지 열었지만,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집주인들을 I 업체 대표를 사기와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현재 해당 사건은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 중입니다.
■ 서울 한복판서 버젓이 "월 수익 보장"…직접 상담 받아보니
그런데 이 대표, 최근 또 다른 상호의 임대 관리 회사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해당 업체는 서울의 한 오피스텔 앞에 현장 사무실을 차려놓고 버젓이 영업 중이었습니다.
취재진이 직접 임대 투자를 위한 상담을 받아봤습니다. 상담원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집주인들을 대신해 오피스텔을 관리해준다. 공실 여부와 관계없이 시세에 맞춰 고정적인 월세 수입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홍보했습니다.
최근 발생한 이중 계약을 통한 전세사기 사건 때문에 걱정이 된다는 말에 업체 직원은 "행여나 그렇게 생각할까 봐 우리는 오직 월세만 취급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엔 세입자를 가장해 인근 부동산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봤습니다. 해당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 관리 업체가 보유한 매물을 자신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다"며 "원하는 게 있으면 전세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월세만 취급한다"는 업체 측의 설명과 "전세도 가능하다"는 부동산 측의 설명, 이 사이에서 집주인과 세입자는 피해자가 되는 셈입니다.
■ 임대 업체 폐업한 경우엔? 집주인과 세입자 법적 분쟁
취재진은 몇 년 전 또 다른 임대 관리 업체가 천안과 수원 등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챙기다 기소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인 한 명이 수임한 사건만 60여 건, 피해 금액만 30억 원에 육박합니다.
문제는 임대 업체가 잠적하거나 폐업한 뒤입니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사기 피해자인 셈이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세입자 입장에선 집주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세입자와 보증금 반환 소송 중인 한 임대인은 "세입자들 입장에서 보면 사실 저희에게 보증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지도 못한 돈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임대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은 대부분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겁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정 수익을 확정 수익으로 준다든지 또 일괄 관리해주겠다고 하면 일단 믿지 말아야 한다"며 "특히 관리회사에 맡겨버리면 월세를 전세로 놓고 도주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대리인이 있는 경우에도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계약을 맺는 당사자에게 반드시 계약 내용을 고지해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송락규 기자 (rock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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