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잘하면 다 용서, 실력이 곧 서열..'행복한 스포츠' 망친다

이상철 기자 2021. 2. 1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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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구계에서 불거진 스포츠계 학교폭력 사태는 '성적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문화'가 만든 참극이다.

이기는 것이 스포츠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도 '2030 스포츠 비전'을 발표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고 행복한 공동체를 형성하겠다고 했다.

건강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행하는 스포츠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바로잡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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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자매' 이재영(왼쪽)과 이다영(오른쪽)은 과거 학교폭력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했다. 소속팀은 무기한 출전정지,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무기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사회적 공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 뉴스1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최근 배구계에서 불거진 스포츠계 학교폭력 사태는 '성적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문화'가 만든 참극이다.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괴물'을 만든 건 오랜 전통처럼 이어온 '악습' 때문이다.

체육인은 툭하면 "1등만 기억될 뿐 2등도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프로스포츠는 말할 것 없고 아마추어스포츠도 인식이 다르지 않았다. 좋은 대우와 부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잘해야한다는 게 꾸준한 가르침이었다. 보고 배운 것이 그랬으니 그게 당연했다. 학생 때부터 잘하는 게 먼저였기에 자연스럽게 인성은 후순위였다.

'운동부'와 '폭력'은 같은 선에 있었다. 지도자는 매를 들었고 선수끼리도 위계질서가 심했다. 군대보다 더한 계급 차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기합 정도는 당연한 처사라고 인식했고 '다 너희가 잘 되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말로 포장했다. "예전에도" 그랬으니 딱히 반발하지 못하며 참고 버텨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진학을 하고 계속 운동선수가 되려면 문제가 있다 생각돼도 일단 따라가야했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내야 무리 속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불합리한 시스템을 뜯어 고치지 않은 채 '선의의 경쟁'과 '우수 선수 선발'이라는 의미만을 반복적으로 붙였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불합리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고 있는 체육계다. 스포츠 인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도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이다.

여전히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하다. 지도자와 학교는 늘 우수한 성적에 목을 매고 그렇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됐다. 어떤 일탈을 벌여도 제어하지 않았다. 도를 지나친 괴롭힘을 가하더라도 주위에서 알아서 눈을 감고 사실 숨기기에 바빴다.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큰 팀일수록 더 심했다.

이재영과 이다영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월등한 기량을 뽐냈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남용했다. 독불장군이었다. 고삐가 풀려 자기 기분이 나쁘다며 동료들을 무시하고 괴롭혔다. 금품을 갈취했고 흉기를 들어 협박까지 했다. 삐뚤어진 10대 청소년의 범죄를 보고도 누구 하나 제대로 감시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가 나왔다. 비단 쌍둥이 자매만 해당되진 않는다. 시쳇말로 실력이 곧 서열이었고 주연을 위해 조연은 기꺼이 희생해야만 했다. 그것이 인권침해일지라도.

때리고 맞는 게 당연하다는 문화였으니 폭력 행위에 둔감해졌다. 잘해서 좋은 성적만 올리면 그만이었다. 트로피가 남으면, 뒤에서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도 넘어갔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이기는 것이 스포츠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한다는 가르침도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즐거움 위에서 펼쳐져야한다. 승패를 떠나 스포츠의 재미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게 가장 큰 가치다. 정부도 '2030 스포츠 비전'을 발표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고 행복한 공동체를 형성하겠다고 했다. 건강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행하는 스포츠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바로잡아야한다.

또 다시 스포츠의 가치가 훼손됐다. 이번 기회에 뿌리까지 뽑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 문화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안타까운 도돌이표는 이어진다.

rok195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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