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역대 최대 증가.. '일자리정부' 민낯 드러났다

남혜정 2021. 2. 1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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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취업자 21만 ↓.. 실업자 110만
경제활동 인구 전년比 17만명 감소
주요 고용지표 역대 두 번째로 심각
장기일자리 줄고 주36시간미만 10%↑
숙박·음식점업 일자리 37만개 사라져
文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 95만 늘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 고용상황이 날로 나빠지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최악이라는 성적표가 16일 나왔다. ‘비정규직 제로’를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4년간 비정규직 근로자는 95만명이나 늘었다. 역대 정부 최대 증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거듭 강조했으나 공공부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활동 여건 개선과 노동개혁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연간 데이터 분석을 근거로 지난해 주요 고용지표를 과거 경제위기와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취업자와 경제활동인구 감소, 실업자수 증가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대비 17만4000명 감소했다. 이 감소폭은 1998년(35만4000명)에 이어 역대 두번째다. 취업자 수는 2690만명으로 전년 대비 21만8000명 줄었다. 1998년 127만6000명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큰 감소폭이다.

지난해 실업자 수는 110만8000명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49만명, 1999년 137만4000명에 이어 세번째로 높았다. 실업률은 4.0%로 2001년(4.0%)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다.

장시간 일자리는 감소하고 단시간 일자리는 증가하는 등 일자리 질은 더욱 나빠졌다. 주당 36시간 이상 일하는 취업자는 2011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120만3000명(-5.6%) 줄어든 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595만6000명으로, 55만4000명(10.3%) 증가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영향으로 대면서비스 업종인 숙박·음식점업 취업자가 지난달 37만개 가까이 사라졌다. 지난달 숙박·음식점업 취업자는 196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6만7000명 줄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가 95만명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패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 정부 첫해인 2017년 비정규직 근로자는 9만7000명 늘었다. 이어 2018년에는 3만6000명, 2019년에는 86만7000명으로 갈수록 급증했다. 2019년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748만1000명으로 처음으로 7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전체 근로자 수가 감소한 영향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5만5000명 감소했지만,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규모는 742만6000명에 달했다.

비정규직 증가 규모는 박근혜정부 때 53만명과 비교해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이명박정부 5년간 22만2000명 증가한 것과 비교해도 4배나 많다.

비경제활동인구는 1677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45만5000명 늘어 2009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이 중 ‘그냥 쉬었음’ 인구와 구직단념자는 각각 237만4000명, 60만5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였다. 특히 20대 비경제활동인구는 7.5% 늘어나 전체 평균(2.8%)을 크게 웃돌았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가 지속되고 기업들의 경영부진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일자리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됐다”며 “고용 개선을 위해서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규제완화, 경영환경 개선 등 민간경제 활력제고를 통해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에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정부도 고용유지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정책으로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이어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고용 위기 타개를 위한 총력대응을 각 부처에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월의 고용충격을 딛고 2월을 변곡점 삼아 빠르게 일자리가 회복되도록 범부처 총력체제로 대응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세금 일자리만 양산… “밑빠진 독 물붓기”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직접일자리를 쏟아내고 있다. 고용지표가 갈수록 악화되는 데 따른 정부의 고육책이다. 기업활동이 일자리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사라진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 비정규직 일자리만 만들어내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악화돼온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정부의 일회성 일자리 창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합심해 1분기까지 90만개 이상 직접일자리 창출 계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약속하자 재계 등에서는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며 우려했다. 직접일자리란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한시적 일자리 사업을 의미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고용 상황은 ‘고용쇼크’ 수준이다. 1월 실업자는 157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취업자 수는 98만2000명 줄어 1998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며 고용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일자리 상황이 나빠졌다.

결국 정부가 직접일자리 90만개로 지표 반등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정부의 재정지출과 함께 민간의 투자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 역시 민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날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코로나19로 모든 나라가 고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부터 제조업 취업자가 감소 추세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민간고용 창출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재계에서는 직접일자리 90만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평가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1분기 마지막 날까지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90만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건지, 설령 만든다고 해도 급하게 만들어진 일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일자리의 탈을 쓴 복지”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만들어낸 90만개 일자리 근로자들의 계약이 끝나면 이들에게 실업급여도 제공해야 한다. 지난해 지급된 실업급여는 11조8000억원에 달했다. 지난달 실업급여 신청자 수도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보험기금 고갈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장관은 “연구용역을 맡겼고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고용보험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와 논의해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고용보험료 인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민간에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타다’ 서비스만 놓고 봐도 정부의 규제로 일자리 1만2000개가 사라졌다”며 “국내 생산기지 설립을 위해 규제만 풀어도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남혜정·이도형·정필재 기자, 세종=우상규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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