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로 생명 위협 느낄 정도로 맞았다".. 끊지 못한 체육계 학폭의 굴레

김민정 기자 2021. 2. 1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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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밖에서 선배가 후배를 먼저 봤는데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함께 있던 동기를 모두 소집해 운동실에서 골프채로 풀스윙해 멍이 들 정도로 내리쳤다. 골프채로 때리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직접 겪어보니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한 사립대학교 골프학과에 입학했던 김민수(가명·25)씨는 16일 조선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선배들은 벌을 줄 때마다 과 대표인 동기를 앞으로 불러 몸이 붕 뜰 정도로 발로 차고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며 "연대 책임이라는 구실로 과 대표부터 본보기로 때린 뒤 동기들을 차례대로 세워놓고 골프채로 때리고, 성에 안 차면 온몸을 구타하면서 폭언을 해 정신적인 고통까지 줬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최근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를 포함해 배구선수들의 과거 학창 시절 교내 폭력에 대한 폭로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구타는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라며, 자신이 대학을 다녔던 4~5년 전에도 빈번하게 행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강의가 없는 날에도 언제 있을지 모를 선배의 집합 명령이 두려워 매일 학교에 가야 했다"면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동기들이 연대책임으로 더 맞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골프학과에 입학했지만, 골프를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1년 내내 맞기만 한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며 "1학년을 마치고 바로 입대해 자퇴하겠다며 2년 내내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했다.

김씨는 "견디다 못해 학과에 학교폭력을 신고했지만, 어디서 얘기가 나왔는지 오히려 소문이 돌아 더 심한 체벌을 당했다"며 "교수들도 알면서 묵인한다는 생각까지 들자 더 이상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체육계의 일상적인 구타와 인격모독은 여자선수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볼링을 전공한 박민지(가명·27세)씨는 "하루는 선배가 후배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는지 검사를 하겠다며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라고 명령하더라"며 "선배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것을 확인하자, 턱을 잡더니 그대로 뺨을 20대 때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체육계의 폭력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전국 5274개 초·중·고등학교 학생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4.7%(8440명)가 코치나 선배로부터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 폭언이나 욕설·협박 등 언어폭력도 15.7%(9035명)를 차지했으며, 초·중·고 학생 선수 중 초등학생의 피해 사례가 가장 많았다. 신체 폭력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선배가 후배를 때리거나, 감독이 학생을 폭행하는 등 체육계에서 학교폭력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 감독이 선수들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수사한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지 약 1년 만에 추가 증거가 나와 재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공개된 증거에 따르면 영상은 연습 경기에 패하고 탈의실에 모인 선수들을 향해 감독이 "문 잠가"라고 명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A감독은 한 선수를 지목하더니 아이스하키채를 힘껏 휘둘러 학생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학생이 고통스러워하며 벽에서 손을 떼자 이번에 A감독은 하키채로 머리를 쳤다. 그런데도 A감독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욕설도 퍼부은 영상이 공개됐다.

신입 프로여자배구 선수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긴 게시글 일부. /네이트판 캡처

현재 이름을 날리고 있는 운동선수들로부터 과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이른바 ‘학폭 미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입프로여자배구 선수 학폭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모 구단에 입단한 여자 배구선수로부터 과거 학폭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작성자는 "(가해자는 자신에게) ‘걔는 왜 사냐 죽지’, ‘죽으면 제 장례식장에서 써니 춤을 춰주겠다’고 본인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 얘기했다"면서 해당 선수의 입단 소식을 접한 뒤 배구단에 연락했지만 일주일간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체육계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구타와 인격모독 등은 성과를 우선시하면서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문화, 학연이나 지연으로 뭉친 폐쇄성 등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주임교수는 "학교폭력은 권력의 위아래가 극명할 때 일어나는데, 피해자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운동하는 선수들을 예외적으로 특별히 취급하는 학교 내 문화가 운동부에서 만연하게 발생하는 폭력의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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