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700여 채 기와집 옹기종기..고즈넉한 조선 정취 품은 전주 한옥마을
이성계 초상화 보관 '경기전' 명소로
판소리·민요·풍물·무용교실 운영에
한국화 그리기 등 체험거리도 즐비
전주는 교통의 요지라 호남으로 가는 길이면 철로든 고속도로든, 지나치든 내려서든 스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주를 지나갈 때는 오래 전 들렀던 기억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기자의 기억 속에서 전주 하면 한정식과 국악이 떠오르지만 이 둘 외에도 기억할 만한 곳이 있으니 바로 전주 ‘한옥마을’이다. 10여 년 전 들렀던 한옥마을은 이제 많이 지워져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기억을 각인해보려고 아주 오랜만에 전주를 다시 찾아봤다.
이제 어느 지역을 가든 한옥마을이 있다. 그것이 오래됐든 최근 조성된 것이든, 정성껏 단장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한옥마을이 오늘처럼 보존된 데는 전주의 공이 크다. 전주 한옥마을이 그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30만㎡에 700여 채의 기와집이 어우러진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마을이다. 201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한국관광의 별’ 과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항으로 가는 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전주성의 서쪽을 헐어 도로를 개통하고 길을 닦았다. 이 도로가 해마다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전군(전주~군산)가도’다. 이후 일제는 도로 확장을 위해 풍남문을 제외한 동·서·북문을 모두 헐어 길을 넓히고 집을 지었다. 이곳에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이때 일본인들에게 밀려난 전주의 선비들이 풍남동·교동 일대에 하나둘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한옥마을이 조성됐다. 터전을 빼앗긴 선비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이유는 한옥마을 일대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초상화)을 모신 경기전과 향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효영 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은 “지금은 한옥마을이 전통 마을로 자리를 잡았지만 1930년대만 해도 이곳은 지금의 서울 강남처럼 신흥 부자들이 모여 사는 터전이었다”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천석꾼·만석꾼이 즐비한 부촌으로 유명했다”고 설명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보존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몫 거들었다. 1977년 마을 근처를 통과하는 전라선 철도로 기차를 타고 지나가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한옥마을이 들어왔고 그는 “이 마을을 잘 보존하라”고 지시했다.
이 말 한마디는 곧 지역 주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한옥 형태를 변경하는 것이 일체 금지됐고 지붕의 기와가 낡아 안방으로 비가 쏟아져도 손을 댈 수 없었다. 요즘이야 고택으로 지정되면 문화재청에서 자금을 비롯해 여러모로 지원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정부 지원은 언감생심이었다.
이런저런 이유 덕분에 현재 한옥마을에는 한옥 753동, 비한옥 212동이 들어서 있다. 숫자에서 보듯 한옥 외에 현대식 건물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15년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마을의 대부분이 한옥이었는데 이제는 한옥마을 외곽으로 들어선 현대식 건물도 적지 않다. 이들 현대식 건물에는 한복 대여점, 전동차 대여점, 체험 공간 등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김 해설사는 “이 같은 지형 변화가 정체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마을 건물들이 사유재산이다보니 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개발 제한에 걸려 낙후 지역으로 차별받았던 억울함이 점차 해소되고 더욱 잘 보존하자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옥마을에는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국악 공연장에서는 전통 국악 공연(산조, 판소리, 민요, 전통 무용, 사물놀이 등)등을 직접 배워 볼 수도 있는 판소리·민요·풍물·무용 교실이 운영되고 있고 소리 제작소에서는 피리·부채·열쇠고리 등을 직접 제작해보는 ‘소리 테마 만들기 체험’이 진행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화 그리기,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거리가 준비돼 있다. 전주 한옥마을을 만끽하려면 주차장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미리 프로그램 및 안내 책자를 살펴보고 돌아다니면 편리하다. /글·사진(전주)=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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