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본, 다른 일본] "여자력 높이자".. 日 여성들은 왜 여성다워지려 하는 걸까

2021. 2.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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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성 차별'인가, '성 차이'인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양성 불평등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남녀 사이의 신체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결정론적 사고방식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접근법의 차이에도 불구, 두 나라 모두 양성평등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여성은 말이 많아 회의가 오래 걸린다”는 논란의 발언으로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사임하는 소동이 있었다. 모리 요시오 전 회장은 지금까지도 여러차례 발언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예전에 “출산하지 않은 여성을 세금으로 뒷바라지할 필요가 없다”라는 실언을 한 적도 있어서, 성별에 대한 왜곡된 신념으로 일생을 살아온 인물인가 싶다. 그의 성차별적 발언이 국제적으로도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키면서 일본 사회도 들끓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정치인이 권력을 독식하는 사태에 대해 시민 사회가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의 매스 미디어 역시 이번 소동을 큰 문제로 보도하고는 있는데, 공적, 사회적 책임을 시사하는 ‘성 차별’이라는 단어 대신 ‘여성 멸시’ 라는 미묘한 뉘앙스의 단어를 쓰고 있다. 마치 그의 발언이 개인의 생각을 여과없이 말했을 뿐인 사적인 일인 양 선을 긋는 인상이 있다. 내게는 이 점이 영 석연치 않다.

◇한국과 일본, 꼴찌를 다투는 양성 평등 지표

한국과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제일 큰 두 나라 (한국이 32.5%로 꼴찌, 일본이 23.5%로 꼴찌에서 두번째 자리다)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급료가 좋은 직업에 종사하거나 높은 직책에 오른 여성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본 경험에서 보아도, 두 나라 모두 공통의 과제가 있다. 능력이 있어도 여성에게는 중책이 잘 주어지지 않을 뿐더러, 여성이 꾸준히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직장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는 고정 관념이 여전히 강하다. 예전에 비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런 사고 방식이 반드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한다고 볼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남자라고 모두 직장 생활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의 의지로 가정을 돌보는 일에 전념할 것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남자가 가정에 충실하면 칭찬을 받는 반면, 여자는 직장에 충실하면 ‘전문성이 있다’는 칭찬을 듣기보다 ‘가정을 내팽개쳤다’는 비난에 우선 시달리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결국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한일의 낮은 양성 평등 지표에도 반영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직장 여성이 부딪히는 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이나 승진 등에 있어 공공연한 차별은 많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여성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암묵적인 벽이 적지 않다. 여성은 직장이 있어도 결혼 후 출산, 육아 등 가사일을 전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못 맡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는 일이 드물고, 그나마 승승장구하는 여성은 독신이 많다. 일본에서도 ‘남존여비’는 극복해야 하는 적폐 중의 하나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정작 당사자인 여성을 포함해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약간 이질적이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은 ‘차별’인가, ‘차이’인가

얼마 전 오랜만에 일본인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그녀와는 대학교 시절 때부터 친분을 쌓아왔다. 외국어 학부를 졸업한 뒤 오사카에 근거지를 둔 무역 회사에서 바이어로 일했지만 결혼한 뒤 전업 주부로 눌러앉고 말았다. 남편이 회사에서 요코하마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두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취업의 길은 더 멀어졌다. 그러던 친구가 이번에는 재취업 소식을 전해왔다. 두 아이가 중고생이 되어 자신의 일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10여년 동안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한 그녀에게 전문적인 업무를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순 작업이 대부분인 연구 보조직이란다. 그녀의 멋졌던 커리어 우먼 시절을 잘 아는 나로서는 출산과 육아에 떠밀려 소위 ‘경력단절녀’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의 상황을 좀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었다. 여성이 직장 생활을 계속하가기에 사회적 환경이 불리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전업 주부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은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무역업이 적성에 잘 맞았고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선택에 후회는 없다. 말하자면, 그녀는 스스로의 상황을 사회의 부조리라기 보다는, 여성이므로 감내해야 하는 조건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 역할을 남녀간 신체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이 ‘경단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성 차별적이라고 성토할 만한 상황도 어쩔 수 없는 남녀의 차이라고 온건하게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이 역시 남녀의 사회적 역할을 바라보는 하나의 생각인 만큼, 그것만으로 비판할 만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삶을 충실하게 영위하기 위한 인생관으로서 이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상황 인식이라면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뿌리깊은 고정 관념 때문에 좌절하는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예를 들어, 일본의 디지털 대사전에 당당하게 수록된 ‘여자력 (女子力)’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혹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그럴싸하게 정의되어는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참으로 난감하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미의식’, ‘철저한 자기 관리’, ‘부드러운 말솜씨’, ‘요리 솜씨를 가꾸는 것’ 등 남성의 구미에 맞는 여성을 묘사하는 항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일부에서는 성차별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성의 고유한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전략적 제언이지, 남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설명도 따라붙는다. ‘여자력’이 지향하는 바는, 남성을 통해 자기 실현을 꾀하는 전근대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면서 매력을 발산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이라는 것이다. 내게는 이런 이야기가 지독하게 성 차별적으로 들리지만, 많은 일본의 여성들이 사회 생활 속에서 여성 고유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 조언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한일 모두 양성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답’을 찾는 것이 과제

한국과 일본이 양성 불평등이라는 공통의 과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좀 다른 듯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전체적으로 남녀간의 신체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결정론적 사고 방식이 비교적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사고 방식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배려와 양보의 짐을 지우고 억압을 합리화하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에 의한 역학 관계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분명하다. 굳이 맞설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남녀가 과도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구도가 불거져서, 오히려 건전한 의견 교환을 막는 듯한 인상도 있다. 사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차별로 볼 것인가, 혹은 차이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관점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차별인가 차이인가 하는 추상적 논란보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 개인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라는 구체적 방법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양성 평등 문제는 ‘정답’보다는 ‘해답’이 필요하다. 일본도 한국도 아직 그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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