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날 때린..'네 이름'을 지금도 검색한다
서른일곱 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17년이 지났지만 잊지 않았다고 했다. 김기현씨(가명) 얘기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했다. 가해자는 여럿이었으나, 이상준씨(가명)는 특히 악랄했다. 지나가는데 발을 걸었고, 엎드려 있으면 뒤통수를 쳤으며, 저 멀리서 오라고 한 뒤 뛰어가면 꺼지라고 으름장을 놨다. 한 번은 새로 산 신발을 보고는 "나랑 바꿔 신자"고 했다. 싫다고 했다가 맞았고, 결국 뺏겼다. 그건 김씨가 생일선물로 받은 거였다.
그는 이제 어른이 됐다.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일은 지워지지 않았다. 악몽도 주기적으로 꿨다. 모든 게 달라졌건만, 꿈속에서 김씨는 여전히 무기력하게 당했다. 입꼬리를 올리는 이씨 특유의 웃음은, 몸서리가 쳐질 만큼 싫었다. 잊고 싶었단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고. 10대 때는 내가 못 나서라고 자책했지만, 지금은 그놈이 잘못했단 걸 알만큼 마음이 자랐다.
김씨는 습관이 하나 있다. 가끔씩, SNS나 포털 사이트에 이상준씨를 검색하는 것이다. 수소문해 찾은 끝에 뭘 하는지 알게 됐다. 지켜보고 있다는 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 되려는 순간, 반드시 끌어내릴 겁니다. 차라리 잠자코 지내는 게 좋을 거예요. 그놈 때문에 학창시절이 너무 끔찍했습니다. 그래놓고 잘 산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이재영과 이다영(26). 두 배구 선수 자매가 준 교훈은 그런 거였다. '인과응보', 좋은 일엔 좋은 결과가, 나쁜 일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거다. '어릴 적에', '철없이 했던'이란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두 자매는 배구 경기는 무기한 나갈 수 없게 됐고, 국가대표 역시 무기한 출전 정지됐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저지른 학교폭력이,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그들에게 되돌아갔다.
22년 전 얘길 들었다. 학교폭력 피해자 정지후씨(가명)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정씨는 직접 맞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자존심이 구겨지는 피해를 여러 차례 당했다. 그의 반엔 소위 일진이라는 놈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허명현(가명)이었다. 허씨는 정씨에게 매점 심부름을 시켰고, 수업 때 필기를 시켰으며, 청소도 대신 하게 했다.
헌혈차가 왔던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피를 뽑고 받은 헌혈증을 뿌듯해하며 보고 있는데, 허씨가 이리 와보라고 했다. 갔더니 그는 정씨에게 "헌혈증 줘, 너 필요 없지?"하며 씩 웃었다. 속이 뒤집어졌으나 정씨는 싫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건넸다. 그때 정씨는 분해서 잠을 설쳤다. 허씨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씨는 "20년이 넘었고, 다른 학창시절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는데도 그때 기억만큼은 또렷하게 난다"고 했다. 체육관이었고, 웅성거리는 가운데 그놈과 둘만 있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고. 그걸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가해자의 학교 안 알량한 권력은 졸업과 함께 끝난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던듯 제 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중에선 평범하게 사는 이도, 혹은 재능과 능력이 있는 이도 있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도 할 것이며, 그로 인해 명성을 얻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걸 피해자가 알 수 있다는 것. 그런 세상이 됐다. 구글링(구글 검색) 몇 번에, SNS 계정 탐색에, 웬만하면 다 찾아낼 수 있다. 특히나 학교에서 함께했던 사이 아닌가. 겹치는 지인이 얼마나 또 많은가. 어떻게든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피해자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다. 푸른나무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7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가해자의 41.5%가 '선생님께 혼났다' 정도였고, 26.8%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다. 10명 중 6명 이상은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거다.
잊을 순 없고, 소식은 들리고, 그러니 지켜보고 있단다. 벼르는 이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정지민씨(가명)는 "학교 다닐 때 돈을 뺏고 다닌 가해자가 의류 쇼핑몰을 하고 있는데, 어디 한번 잘 되나 보자는 심경으로 보고 있다"며 "그런 마음을 먹는 것도 괴로운데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에 대한 학폭 폭로도 커뮤니티에서 이뤄졌다. 조회 수가 40여만 건에 달했다. 이슈는 삽시간에 번졌고,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란 요구가 커졌다. 두 선수는 당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도 입장문을 냈다.
그러니 피해자는 용기를 낼 수 있다. 학교폭력이 범죄이며, 이에 대한 피해가 심각하단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그러니 지지해줄 이도 많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엔 가해자와 만나야했지만, 지금은 울리면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간다"며 "피해자가 힘든 부분을 전할 통로가 많아졌다"고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공정성'에 민감하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 역시 여기에서 촉발된다. 임 교수는 "학폭 가해자가 벌 받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서 상을 주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분노"라며 "세상이 공정해질 수 있단 희망이 있으면, 용기를 내서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위치가 뭐든 간에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 배구 선수 자매가 그랬고, 잘 나가던 가수, 배우 등 많은 이들이 학폭 이슈로 인해 뭇매를 맞고 사라졌다.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언젠간 밝혀진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반드시 네게 돌아간다, 그런 사례가 많아지면 '선순환'이 될 수 있다. 학폭을 저질렀고, 저지르고 있고, 앞으로 저지를 많은 이들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 현장서 그리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청소년들 답변 중에서도 그런 얘기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송재준군(16)은 "친구를 쉽게 괴롭히는 애들이 (가해자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보면) 한 번 더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고등학교 교사 A씨(36)는 "나쁜 일을 하면 벌 받는다는 사례로 몇몇 뉴스를 전해준 적이 있는데, 예상보다 경청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 노래는 정말 잘 될 거고
너는 이 노래를 피해서 걸어다닐 수 없어.
날 따라다니며 괴롭힌
널 따라다녀.
[학폭 피해를 고백한, 래퍼 오르내림 - 브레이킹배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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