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의 이 영화, 이념·인종 분열된 미국 치유하다
“오늘 밤, 온 세상의 멋진 뉴스를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남북전쟁(1861~186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870년대 미국. 키드 대위(톰 행크스)는 패전한 남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문에 게재된 소식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유행성 수막염부터 연락선 침몰, 철도 노선 통합까지 낭독하는 뉴스의 주제는 다양하다. 전쟁에서 패한 남부 주민들이 북부 대통령의 소식에 야유를 퍼붓는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게 받는 입장료는 단돈 10센트. 그 역시 남부 편에 참전했다가 동료들을 잃은 쓰라린 기억을 안고 있다.
다음 마을로 향하던 키드 대위는 길 한복판의 뒤집힌 마차 근처에서 인디언 복장의 백인 소녀 조해너(헬레나 쳉겔)를 발견한다. 소녀는 부모를 모두 여읜 채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 바람에 영어는 한마디도 못한다. 키드 대위가 650㎞ 떨어진 백부(伯父)의 집까지 소녀를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말도 통하지 않던 이들 사이에 ‘가족애’가 싹튼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는 지금으로 따지면 아나운서나 변사(辯士)에 해당하는 이색 직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다. 보통교육이 정착하기 이전, 문맹률이 높았던 시골에서는 뉴스도 공연처럼 들려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미 여성 작가 폴렛 자일스의 2016년 동명 소설에 바탕한 영화 제목도 그래서 ‘세상의 소식’이다. 지역 갈등과 인종차별로 분열된 영화의 사회상은 현재 미국에 대한 은유가 된다. “멕시코인, 흑인, 인디언, 그들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모두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목을 딸 거야.” 극우적인 민병대장의 우려에 키드 대위는 “전쟁은 끝났어요. 언젠간 싸움을 멈춰야 합니다”라고 다독인다. 이 대화는 150년 뒤의 미국을 예견하는 것만 같다.
영화를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는 기억을 잃은 첩보원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등장한 ‘본 시리즈’(2~3편과 5편)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도심을 질주하는 차량의 추격전이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을 뮤직비디오처럼 화려한 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특기. 하지만 이번에는 도심도 차량도 모두 버리고, 19세기 후반 황량한 미국 남부 마을로 무대를 옮겼다. 흡사 차포 모두 떼고 두는 장기처럼 액션물에서 서부극으로 장르를 바꾼 셈이다.
도심의 차량 대신 광활한 초원의 마차로 영화의 풍경이 바뀌니 템포도 한결 느긋하고 여유가 넘친다. ‘장군의 아들’ 감독이 갑자기 ‘전원일기’ 연출가로 변신한 것 같다고 할까.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속도 적응에 약간의 인내심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막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중반부 총격전에서 감독의 장기가 다시 빛을 발한다. 특히 암벽 같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근접 사격전에서는 ‘본 시리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전체적으로 서부극을 가족극으로 감싼 독특한 구조. 뉴스가 타인과 바깥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에서 비롯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결말 장면도 무척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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