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교의 산실’ 캠프 데이비드가 부활한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2021. 2. 17. 03: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날 연휴에 찾아… 대화·협력의 ‘미국 전통’ 복원 신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손녀 나오미는 14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눈 덮인 숲을 배경으로 찍은 바이든 대통령의 사진을 올렸다. ‘에어포스 원’이라고 쓰인 가죽점퍼를 걸친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의 별장 캠프 데이비드’란 로고가 새겨진 황갈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 연휴를 맞아 대통령들의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 처음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들이 선물한 모자였다.

미국에서 2월 셋째 월요일은 역대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연방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이다. 토·일요일과 붙이면 사흘 연휴가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기간인 13~15일 사흘을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캐톡틴 산맥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보냈다. 아내 질과 차남 헌터의 딸 나오미 등 가족까지 함께했다. 나오미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바이든이 닌텐도사의 자동차 레이싱 게임 ‘마리오카트’를 하는 동영상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대통령의 날 연휴에 캠프 데이비드를 찾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 ‘찬밥’이었던 캠프 데이비드가 다시 대통령의 휴양지로 복귀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38년 공무원 휴양지로 건설돼 해군이 관리하는 캠프 데이비드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 캠프 데이비드를 찾기는 했지만, 자신이 소유한 버지니아주의 트럼프 골프장이나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휴일을 보내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취임 첫해인 2017년 1월 트럼프는 “캠프 데이비드는 매우 소박하다”며 “한 30분 좋아하다가 말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G8(주요 8국) 정상들을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해 정상회의를 가졌다. 백악관은 회의 장소를 시카고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정상들이 더 친밀한 대화를 나눌 분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하지만 바이든은 캠프 데이비드 방문을 통해 트럼프가 경시했던 미국적 전통의 ‘복원’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15일 대통령의 날을 맞아 트위터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미국의 스토리는 대통령들의 스토리가 아니라 용기, 인품, 힘, 저항력을 가진 미국민들의 스토리”라면서 에이브러햄 링컨, 존 F. 케네디,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 등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을 함께 거론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1940년대부터 워싱턴 인근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를 지상낙원이란 뜻의 ‘샹그릴라’로 부르며 자주 찾으면서 이곳이 대통령의 별장이 되는 길을 열었다.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 이름인 ‘데이비드’를 따서 이곳을 ‘캠프 데이비드’로 명명했다.

캠프 데이비드는 세계 외교사에서 중요한 일들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루스벨트가 1943년 이곳에서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와 만나 제2차 세계대전 종식 방안을 논의한 이래, 중요한 회의가 여러 번 열렸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59년 9월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이젠하워가 정상회담을 위해 흐루쇼프를 초청한 곳도 캠프 데이비드였다. 이틀간의 정상회담 뒤 아이젠하워와 흐루쇼프는 “이번 의견 교환이 서로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영속적 평화의 성취에 기여하길 희망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8년 9월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평화 협상을 했다. 12일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합의된 협정의 이름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2000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지도자를 이곳으로 불러 중동 평화 협상을 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로 외국 정상들을 자주 초대했는데,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때도 여기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2년 G8(주요 8국) 회의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탈레반과의 평화 합의를 위해 캠프 데이비드에 탈레반 지도자들을 초청하려다가 ‘테러리스트를 대통령의 별장에 초청할 수 없다’는 반대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G7(주요 7국) 정상회의도 코로나로 성사되지 못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