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엄마

강경희 논설위원 2021. 2. 17.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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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의 빈집에서 2019년생 아기가 굶어 죽은 상태로 몇 달 만에 발견됐다. 용의자는 20대 초반 친모였다. 전 남편과 맺은 사이에서 난 딸이라 보기 싫다며 그 어린아이를 버려두고는 다른 남자와 임신한 아이를 낳겠다고 혼자 이사 가버렸다. 아이 앞으로 나오는 아동수당은 꼬박꼬박 탔다.

▶지난해 7월 일본 도쿄에서 24세 식당 종업원이 세 살배기 딸을 집에 혼자 두고 남자 친구와 8일간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극도의 탈수와 굶주림으로 숨졌다. 이보다 앞서 2010년 오사카에서는 세 살짜리 여아와 한 살짜리 남아가 한 달간 방치된 채 집 안에서 아사해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유흥업소 종업원이던 싱글맘이 아이 돌보기를 포기하고 현관문과 창문을 테이프로 붙인 뒤 집을 나간 것이다. 집 나간 엄마는 호텔에 머물면서 남자들과 놀러 다녔다. 굶주린 아이들은 화초도 먹고 기저귀까지 뜯어 먹으며 살려고 몸부림치다 죽어갔다.

▶아이를 때리는 것만 아동 학대가 아니다.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명백한 아동 학대다. 부모가 아이 돌보기를 포기하고 방치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니글렉트(neglect)’라고 부르는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 한 해 아동 학대 10만건 가운데 9% 정도가 니글렉트다. 우리 사회에서도 직접 폭력을 휘두르는 아동 학대 이상으로 아이를 방치하는 방식의 아동 학대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모성애’는 19세기 이후 국가가 여성에게 아이 돌보는 본능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근대화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파리의 신생아 가운데 모유 먹고 자란 아기는 5%도 안 됐다. 모유를 먹이면 유아 사망률이 낮아지는데도 엄마들 열 중 아홉이 아기를 멀리 도시 외곽 유모에게 보냈다. 유모의 방기와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아기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부모는 무관심했고 아이 장례식조차 안 갔다고 한다. 근대화 이전에는 아동 방치가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성애, 부성애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나.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지친 젊은 아버지가 어린 딸을 안고 숨진 모습이 세계인을 울렸다. 자신만 살자고 했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버지가 제 목숨을 버린 것은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본능 때문이었다. 구미에서 한 살 갓 넘은 아기가 영문도 모르는 채 배고픔, 공포 속에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인간인가, 악마인가. 그 엄마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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