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셰프의 자격

박준우 셰프·푸드칼럼니스트 2021. 2. 1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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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의 한 레시피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을 하고 있을 때다. 방송국에서 배려해준 덕에 마치 연예인처럼 개인 대기실을 배정받았는데, 언젠가부터 그 방은 촬영 전 길고 짧은 대기시간을 보내기 위한 셰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업계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조금은 수다스럽게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건 마치 고등학교 자습 시간이나 동네 공원 벤치에 모인 주민들의 오후 모임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한번은 큰 레스토랑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던 요리사 하나가 찾아왔다. 겨우 직원 두 명을 쓰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너무 젊은 셰프가 자신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못내 언짢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셰프는 금방 자리를 떴지만, 곧이어 다른 젊은 셰프가 한 사람 들어와 좀 전의 선배 셰프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직원을 스무 명이나 쓰고,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요리사보다는 공무원처럼 일하는 사람이 후배들 앞에서 너무 으스댄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 대한 평가의 객관성을 떠나, 어느 관계에서나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오해였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과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현대사회에서 오직 한 가지 능력에 기대어 버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해야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해해야만 한다. 경영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기술자가 마케팅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십수 년째 요리사와 주방장, 요리연구가 등의 호칭을 대신하고 있는 셰프(Chef)라는 단어의 기원은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카푸트(Caput)’에서 온 것이라 우선 ‘수장(首長)’을 뜻한다. 이것은 ‘주방의 수장’을 줄여 부르게 된 것일 테지만, 원래 외래어라는 것이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며 사람들의 문화와 섞여 조금씩 다른 뜻을 취하기도 하지 않던가. 이제는 주방의 규모나 경력을 떠나 자신의 요리에 머리(얼굴)를 걸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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