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위축시키는 '언론 6법'[동아 시론/이재진]
징벌적 손배제로 표현의 자유 후퇴 우려
언론 '고의성' 입증 없으면 위헌 가능성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무엇보다 동일한 불법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적용된다. 대개 기업의 불법적인 영리 행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언론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은 보도로 인한 피해의 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 남용의 위험성을 고려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히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4년 ‘설리번 사건’에서 명예 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공직자의 경우(이후에 공인으로 확대) 소를 제기한 당사자가 언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도록 판결했다. 이 사건 이전에는 진실 입증 책임이 언론에 있었는데 이를 제소자(피해자) 측으로 옮긴 것이다. 또한 단순한 손해배상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할 때는 공인이 아닌 일반인(사인)도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때 현실적 악의란 보도한 기자나 이를 책임지는 사람이 보도 당시 그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진실 여부에 대해 파악하려는 노력에 태만했다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 이후 언론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이는 결코 언론이 잘해서 내려진 결정이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0% 이상은 언론에 대해서 불만이 크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방대법원도 설리번 사건에서 ‘언론이 함부로 보도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언론의 자유에 가치를 둔 것은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기능의 중요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국내에서 언론 개혁 바람이 불었을 때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언론피해구제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다. 당시 제기된 주장의 골자는 ‘매우 악의적이고 사실이 아닌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규정이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는 반대 여론이 컸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언론 관련법 개정 움직임을 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매우 악의적이고 사실이 아닌 보도’가 ‘가짜 뉴스’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론에도 허용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 보도가 잠재적인 가짜 뉴스로 취급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서 가짜 뉴스라고 외쳤던 충격적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질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우리 언론의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나 의혹 제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설리번 사건에서 윌리엄 브레넌 대법관은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은 억압되어서는 안 되며 확고하고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정부와 공직자들에 대한 맹렬하고 신랄한, 때로는 불쾌하리만큼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신랄하고, 불쾌하며, 날카롭고, 공격적인 언론 보도를 모두 가짜 뉴스의 범주에 두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적용 대상이 달라지는 사법 체계상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결국 가짜 뉴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 미국의 경우처럼 진실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두거나 언론의 고의성(현실적 악의)을 입증하도록 하는 장치를 두지 않는 한 개정법은 위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론에 아무리 불만이 많다 해도 규제 카드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두고 더 많은 논의를 거쳐 국민들의 공감을 얻은 뒤에 제시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으로 인해 보장되는 권리인 만큼 비판적 언론 보도를 잠재적 가짜 뉴스로 규정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려는 법 규정은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도를 후퇴시킬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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