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일상, 새로운 희망[사진기자의 '사談진談']

김재명 사진부 기자 2021. 2.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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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남 진해의 미 해군 병원에서 한 미군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며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미 해군 홈페이지
김재명 사진부 기자
코로나19의 공포가 점점 가까이 엄습해온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선생님이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알림과 함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었다. 줄넘기 뛰는 소리, 태권도 기합 소리, 피아노 소리가 왁자지껄하던 건물은 어둡고 적막감이 흐르는 곳으로 변했다.

코로나는 두 아이를 둔 마흔 중반 기자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집을 나서며 착용한 마스크는 식사 때를 제외하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벗을 수 있다.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급적 손잡이도 만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역시 잃어버린 1년이었다. 지난해 첫째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란 이유로 일주일에 하루만 등교 수업을 했다. 나머지 4일은 집에서 TV나 인터넷을 붙들고 있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잠옷 바람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수업 시작을 기다렸고 운동장을 뛰어다녀야 할 체육 활동은 선생님이 제작한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됐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설레며 학교생활을 시작했지만 교실에서보다 EBS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더 많이 배웠다. 친구들과 함께해야 신나는 음악 수업도 화상으로 이뤄졌다.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해도 점심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교실 밖으로 나갈 수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도 없었다. 첫 학교생활을 인터넷으로 접하다 보니 스마트폰이나 TV를 다루는 실력은 꽤 수준급이 되었다.

취재를 다녔던 서울 거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명동, 이태원, 홍대 거리 등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인파 사진을 찍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기자가 찾을 때마다 문을 닫은 점포만 늘고 있다.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했던 노점상도 갈 곳을 잃었다. ‘임대’라고 써 붙인 가게와 텅 빈 거리만 남았을 뿐이다. 식당과 PC방, 헬스장 등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컴퓨터와 운동기구를 비롯한 각종 집기들은 중고물품상으로 쏟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정부 지침에 따라 단축 영업을 했거나 문을 닫았던 카페, 식당, 학원 등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은 하나둘 지쳐갔다. 거리 두기를 완화하면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강화하면 줄어들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사실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정부 지원금은 매달 나가는 임차료, 대출금,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말하며 눈물 흘리는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조차 미안했다. 어쩌면 이들의 희생과 동참으로 만들어진 것이 방역 성과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은 사회의 밝은 모습보다는 어렵고 힘든 장면만 기록하고 전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냈기 때문에 그 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다음 주면 국내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정부는 백신의 도착과 운송, 접종까지 오차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의훈련을 반복했다. 기자들 또한 접종 현장을 찾아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아마 나도 카메라를 메고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려 병원을 찾을 것이다. 마스크 없이 숨 쉬고, 아무 제약 없이 가족을 만나거나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생활로 되돌아가는 시작을 알리는 사진일 것이다. 백신이 코로나를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할 것이고, 우리는 한동안 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백신 접종 사진은 하나의 획을 긋는 희망의 분기점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본 사진 속 미군은 백신을 맞으며 ‘엄지 척’을 하고 있었다. 바늘이 찌르는 아픔보다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고 바로 일상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에게 조금씩 잃어버린 시간을 채워주고 싶다. 둘째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놀이동산이나 야외로 소풍을 가서 활짝 웃는 사진도 많이 남겼으면 한다. 큰아이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자전거도 어울려 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년 졸업식에는 가족들이 참석해 꽃다발을 전하며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재명 사진부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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