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경향신문]
30여년 전의 일이다. 1988년 12월, ‘내재적’ 북한연구 방법을 제기한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나의 짧은 글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를 계기로 해서 북한연구에 활력도 생겼지만 일부에서는 단순히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소련이 해체되었고 중국에서도 톈안먼 사태가 발생, 지구적 범위에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완전 승리를 구가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담론이 풍미하는 분위기 속에서 내재적 연구 방법은 대상이 바로 북한이었기에 예외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사회주의 대국이 해체되거나, 아니면 극심한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작고 낙후한 북한이 결코 더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었다. 단지 그 시기가 언제 올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수준의 이해를 보여준 구체적인 실례가 바로 1994년 10월에 체결된 북·미 간의 제네바 협약 때 클린턴 행정부의 협상책임자 갈루치의 실토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포기 대가로 양국 간의 수교와 평화협정을 약속하고 경수로 건설과 중유 제공을 골자로 한 이 협정이 2003년 완전폐기에 이른 배경을 여과 없이 설명해주고 있다. 당시 미국은 10년 이내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이 협약에 서명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이런 식의 북한 붕괴론은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면서도 북한 이해의 틀로서 큰 변함은 없었다. ‘악의 축’의 하나라고 군사적 위협도 해본 부시, 북한은 저절로 망하기 마련이기에 ‘전략적 인내’를 고수한 오바마도 이런 기본 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를 처음으로 흔든 트럼프는 두 차례에 걸친 북·미 정상회담까지 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백악관을 떠났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또 흘러나오는 북한 붕괴론
북 사회에 견고한 인식틀 만들고
이를 지속해서 재생산해왔다
북을 이해하는 방법 ‘내재적 접근’
이젠 진정성 담긴 연구를 기다린다
오랫동안 이어온 북한과 미국 간의 깊은 상호불신이 문제의 근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북한 사회에 대한 견고한 인식 틀을 만들고 이를 지속해서 재생산해온 어떤 지식체계가 있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다.
세계적 범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창달한다는 목적으로 1941년에 워싱턴에 설립된 ‘프리덤 하우스’는 1973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의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행사의 여러 문항에 걸쳐 최고 1점에서부터 최하 7점을 매겨 ‘자유지수’를 발표한다. 1점과 2점은 ‘자유스러운’ 나라, 3점에서부터 5점 사이는 ‘부분적으로 자유스러운’ 나라, 5점에서 7점까지는 ‘자유스럽지 못한’ 나라로 분류된다. 이 자유지수에 따르면 북한은 항상 가장 자유스럽지 못한 몇몇 나라에 속해왔다. 프리덤 하우스가 자유의 정도를 수치(數値)로 표현해서 객관적인 인상을 주지만 기본에서는 주관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재원의 대부분을 미국 행정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연구의 중립성에 대해서도 의혹을 받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2006년부터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연구소인 ‘인텔리전스 유닛’이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指數)’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67개국의 선거 과정, 정부 운영방식, 정치참여, 정치 문화 등을 분석해서 완전, 불완전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혼합형으로 나눈다. 얼마 전 발표된 2020년 자료에 의하면 남한은 10점 만점에 8.01을 받아 완전 민주국가로, 북한은 수년째 계속 1.08을 받아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 연구방법은 특히 혼합형을 분석하는 틀이 아주 자의적이고 거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고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시사주간지가 내건 ‘자유주의’는 미국의 중동과 남미 정책을 계속 옹호했으며 2011년 ‘아랍의 봄’에 권좌에서 축출당한 튀니지의 벤 알리를 마지막까지 두둔했다. 또 부자들의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좀비의 이론’이라고 비판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을 ‘볼품없는 케인스주의자’니 ‘지식사회의 마이클 무어’라고 신랄하게 공격하기도 했다. 마이클 무어는 <멍청한 백인들>이라는 풍자적인 저서를 냈고 ‘9·11 사태’에 우왕좌왕하던 부시의 모습을 기록한 영화 <화씨 9/11>의 감독이다. 이런 논지를 펴는 언론의 연구소가 북한에 0점을 주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도 자유, 행복 또는 삶의 질처럼 그의 내용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질적인 개념들을 자연과학이 보여주는 측정의 정확성을 모범 삼아 접근해보려고 한다. 수치상으로 계량화되어야만 잡히지 않는 것도 잡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고 이에 따라 표준화, 신빙성 그리고 비교 가능성도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살며 만들어내는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현상을 제한된 시각으로만 접근하려 들고, 또 연구대상이 단지 자료를 제공하는 ‘죽은’ 사물로만 여긴다는 비판이 따른다. 또 보이는 현상과 본질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없다는 단순한 믿음은 잘못된 결론도 자주 도출하기 마련이다. 모르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당시에 믿었다.
이런 문제점을 보면서 북한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더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로 제기된 것이 바로 내재적 접근이었다. 이는 정확한 방법론이라기보다는 북한을 실천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럽의 인류학자가 열대의 오지에 들어가 원주민의 생활세계를 연구하려면 먼저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배워야 한다. 이를 통해 자기가 성장한 생활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원주민과 자신의 인식 지평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어떤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세계의 지평이 반드시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의 생활세계는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편견까지 포함한 경험과 상상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간 북한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전망과 예측이 보여준 초라한 성적표를 들여다보면서 북한 사회의 이해에 있어 연구자나 관찰자의 주관적인 희망 사항이 너무 강하게 투영된다는 점을 최근 또 느낀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이른바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해묵은 북한 붕괴론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19, 그리고 자연재해로 인해 북한체제가 붕괴 직전의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과의 갈등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처럼 모험하려 들지 말고 과거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처럼 상황관리만 잘하라는 조언이나 경고처럼 들린다.
나는 이런 종류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장자>의 ‘추수(秋水)편’을 떠올린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濠水)의 돌다리 위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저기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혜자가 물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겠는가?’ 장자가 되물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혜자가 또 말했다: ‘내가 자네가 아니어서 참으로 자네를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처럼 자네도 당연히 물고기가 아닌지라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네’. 이에 장자가 다시 말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가 나에게 내가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느냐고 물은 것은, 내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물어온 것일세! 나는 그것을 호숫가에서 알았지.”
이 대화는 어떤 사실이나 상황을 해석하고 상호이해의 지평을 함께 여는 작업이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출발했다가 되돌아오면서 전개되는 자기반성을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학에서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불리는 타자의 이해과정은 질문과 대답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나선형(螺旋形)처럼 종국적으로 어떤 견해의 일치를 지향한다. 사회과학도에게 가치중립을 요청하기는 실로 힘들다. 그런데도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처럼 진부한 결론을 담은 북한연구가 사실 너무 많다. 그래서 진정성, 책임성 그리고 정열이 담긴 북한연구를 더욱 기다리게 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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