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세계여, 미국에 관여하라
[경향신문]
트럼프는 물러났지만 미국 민주주의는 복구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월6일, 반역적 폭력으로 미국 의회의 새 대통령 당선 승인 절차를 저지하려고 했다. 헌정 질서를 해치려 한 대통령의 선동으로 결국 4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석기 전 의원을 내란선동죄로 8년째 감옥에 가두고 있는 한국에서 볼 때, 더 놀라운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지난 15일, 미국 상원은 탄핵안을 부결했다. 탄핵 반대표를 던진 상원 의원이 모두 공화당 소속이었다고 하여,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가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이 그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미국에 관여할 때이다.
미국은 트럼프 방식과 확실히 결별해야 한다. 인류의 중대 현안인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과 더불어 더 안정적이며 호혜적인 세계 경제질서 규칙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중국이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국의 참여를 통하여 국제 현안을 해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한 탄핵 실패에서 볼 때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무역전쟁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새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중국에 관한 한 트럼프가 옳았다고 말했다.
나는 블링컨 장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년 2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몰아붙여 얻은 ‘1단계 무역협정’은 분열적이었다. 다자주의 국제 통상의 기본 원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국 기업들에만 중국 접근의 특혜를 부여했다. 중국이 호주에서 수입하던 상품을 미국에서 사게 했다. 트럼프의 분열적 일방주의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경제의 굴기를 견제하는 수단은 단지 관세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노동, 인권, 보조금, 디지털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이 중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민감한 영향을 줄 것이 디지털 분야이다.
2019년 미국은 일본과 상품 무역협정과 별도로 ‘디지털 무역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빅 테크’ 기업들이 정보 수집·반출과 처리에서 국경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은행의 금융정보 관리 ‘서버’를 자국 영토 내에 설치하도록 하는 규제를 할 수 없게 했다. 누구나 차별 없이 디지털 제품에 접근하도록 하였다. 또 트위터와 같은 인터넷 ‘상호작용 서비스’에서 이용자가 게시한 글의 폭력성이나 음란성을 이유로 사업자를 처벌할 수 없게 했다. 이러한 내용은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 경제와 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내용이다.
미국은 작년 7월에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에서도 별도의 장을 두어 이러한 디지털 경제 틀을 반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무역협정 규칙을 세계무역 규범의 틀로 만들어 중국의 디지털 경제 굴기에 대항할 것이다.
중국은 현재 구글 서비스조차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 디지털 경제 질서를 알리바바와 같은 전자상거래 보호 규범에 국한시켜 방어하려고 한다. 한편 유럽연합은 매우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 의무와 세금을 디지털 거래에 부과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안보를 이유로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을 불허하고 있다. 은행이 해외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에는 30일 전에 금융감독원장에게 별도로 보고하도록 했다. 아동 성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 이후 상호작용 서비스 사업자의 책임을 무겁게 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관점에서 미국이 시도하는 디지털 무역협정이 중국 배제의 가속도가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 말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가 9억8900만명에 이르렀다. 전자상거래 규모는 중국이 세계 거래량의 약 40%를 차지하여 미국을 압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디지털 기업들은 미국이 미국 증권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퇴출시키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중국 현지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의 중국 정책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작년 말 미국은 오랜 동맹인 유럽연합이 중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앞으로 중국은 유럽과의 투자 협정 그리고 15개 아시아·태평양 국가와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더 많은 요구를 받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에 책임있는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더 균형감 있고 정당성 있는 행동을 하도록 국제사회가 관여할 때이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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