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그대 다시는 서울로 가지 못하리
[경향신문]
신상의 변화로 새로운 집을 찾는 중인데, 소문으로 접하던 부동산시장의 살풍경을 온전히 체감하고 있다. 아파트값 10억원은 더 이상 강남이나 강북 노른자위 지역의 일이 아닌 지 오래다. 변두리의 소형 아파트도 7억~8억원이고, 교통과 생활 여건이 무난하면 10억~15억원이 되어 있다. 서울 부동산 급등의 도미노 여파로 직장 가까운 경기도의 아파트 단지도 신축은 1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부동산 앱을 검색해가며 발품을 팔고 있지만, 온라인 정보보다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세상 탓인지, 내 탓인지 자괴감이 밀려온다.
한동안 거칠어지던 마음과 정신 줄을 부여잡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불가해한 현실이 그저 나의 부족함을 탓할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오랜 기간 대기업에서 일을 했고 현재는 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어 비슷한 형편의 지인들이 많은데 대다수가 일산, 부천, 김포, 산본, 평촌, 수원 등 경기 지역에 산다. 이제는 거의 모든 곳이 신의 영역이 되어버렸지만 서울에 사는 이들 역시 강남권에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그토록 고가의 집들이 넘쳐나는데, 내게 무능력한 친구들만 골라내어 사귀는 독특한 취향과 안목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지위를 이용한 뇌물 착취나 업무시간에 사적인 재테크 활동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온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이 정도가 가장 정상적인 상황이어서다. 부모 은덕이나 우연한 행운, 남다른 재테크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무리한 가계 대출을 받아서라도 10년 이상은 모아야 할 시간이 조금 더 늘었을 뿐, 서울 집값은 언제나 비쌌다.
궁금하다. 대한민국에서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대기업 직장인, 교수, 공무원 대부분이 이렇다면, 그 비싼 집값을 증폭시키며 이 광기를 주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에 빠진 듯한 착시현상이 들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저 한숨만 쉬는데 말이다. 결국 소수의 자산가와 투기 세력들이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과도한 불로소득을 챙겨온 병폐적 기반 위에, 이를 막겠다는 의지만큼 실력을 갖추지 못한 1차원적인 정부대책, 예전만큼 부당 이득이 어려워진 이들의 급박한 조세회피 대응과 여전히 그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언론의 호들갑까지. 고질적 문제 4박자의 화학작용으로 발생한 ‘패닉 바잉’ 현상이다.
최근 서울시장 후보들의 주요 공약 역시 부동산 문제에 집중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과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고, 본인들 대다수가 고급 정보를 이용한 투기 이득의 장본인이어서일 것이다. 수십년간 부정부패의 핵심에 있던 이들이 서민의 아픔을 논하는 모습도, 여전히 욕망과 불안의 다층적 메커니즘을 모르고 이상적인 논리만 펴는 이들도 신뢰가 가지 않는 진짜 서민의 마음은 갈 곳을 잃는다.
고지식한 삶의 참담한 결과를 지켜본 젊은이들은 이제 ‘영끌 대출’에 인생을 건다. 처음 들여다본 부동산카페에서는 서울에서 경기로, 다시 더 외곽으로 밀려가는 이들의 원망과 분노가 쏟아진다. 자신의 아파트에 작은 단점이라도 지적하면 발끈하며 싸우는 이들도 많다. “역에서 겨우 8분 거리인데, 당신은 무슨 짓을 하며 걷기에 15분이 걸린다고 하느냐”면서 화를 낸다. 행여 집값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다. 무섭다 해야 할지, 안타깝다 해야 할지 모를 부동산공화국의 아픈 풍경들.
진통 끝에 최근 발표한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그나마 조금 나아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약자들을 옥죄거나 경기가 왜곡될 요소가 여전히 많다. 더 세심하고 치열한 보완이 필요하다. 서울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 언젠가 일어나야 할 일이라면 고통스러워도 지금 피고름을 짜내는 게 나을 것이라 믿으며 인내하는 날들이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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