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권모 칼럼]그때 그사람들의 '삽질' 경쟁

양권모 편집인 2021. 2.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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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후진성은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열린민주당 김진애 서울시장 후보는 “나만 뉴페이스”라고 자부했다. 실제 박원순 시장을 탄생시킨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주·조연 인물들이 여야 간판만 바꿔 달고 다시 등판했다. 여야의 유력 후보(더불어민주당 박영선·우상호, 국민의힘 나경원·오세훈, 국민의당 안철수)가 죄다 10년 전 선거에 등장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다. 달라진 건 열 살이 더해진 나이뿐이다. 한국 정치의 지체를, 세대교체와 충원의 실패를 이토록 강렬히 증거하는 선거 대진표도 없다.

양권모 편집인

등장인물이 도로 그들이라면, 주제와 시나리오라도 혁신적이어야 새로운 선거 드라마가 전개될 터인데 무망하다. 단일화에 목매는 야권의 시나리오는 그대로이고, 주제도 개발과 토건, 부동산 일색이다. 낡고 흘러간 선거드라마를 재방하고 있는 꼴이다. 무상급식 의제가 도드라진 2011년 서울시장 선거는 대형 개발과 토건·부동산에서 사람·복지·생태·삶의 질 등으로 초점을 옮겨 놓은 계기적 선거였다. 실제 2018년 6·13서울시장 선거는 개발과 집 문제가 화두가 되지 않은 최초의 선거로 기록된다. 이렇게 2011년 무상급식처럼 선거에서 핵심 의제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야 질적 전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역행이다. 다시 개발과 토건, 부동산이 선거의 핵심 의제가 됐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든 여야 가릴 것 없이 수십만호의 주택 공급을 제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발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누가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느냐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야 정당의 주요 후보들이 5년 내 공급하겠다는 주택을 단순히 합치면 300만채에 육박한다. 2019년 기준 서울의 총 주택 수가 373만채다. 30만호를 지으려면 여의도 면적 17배의 땅이 필요하다. 턱없이 모자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는 대안이란 게 또다시 대형 개발을 수반하는 서울의 기간도로 지하화다.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고(박영선·국민의힘 조은희),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 인공대지 뚜껑을 씌우고(우상호), 동부간선도로와 서부간선도로를 지하화(나경원·오세훈)하는 공약이다. 천문학적 예산에 대한 대책과 실현 가능성은 뒷전이다. 온전히 해당 도로를 따라 광범위하게 연계된 주변 지역의 개발 욕망을 자극해 표를 얻기 위해서다.

나아가 ‘뉴타운 DNA’가 뼛속 깊은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도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거론한다. 주거지역 35층 층고 제한도 없앨 태세다. 나경원·오세훈은 경쟁적으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100~133층의 마천루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죄다 부수고, 파고, 덮고, 세우고, 더 높이 올리는 삽질 경쟁이다. 이대로라면 누가 시장이 되든 서울은 다시 거대한 공사판이 된다.

개발이 만능이고 부동산 문제가 전부인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수도 서울의 종합적 발전 계획, 미래 비전을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다. 여당 후보끼리 ‘민주당스럽지 않다’는 공방을 벌이고, 야당 내에서 ‘나경영(나경원+허경영)’ 논란이 벌어지는 판에 사람·복지·교육·의료·생태·균형발전·젠더·청년 등의 가치를 벼리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들 분야에서 너무도 빈약한 정책과 공약은 그 ‘화려한’ 부동산 개발과 현금 살포 공약에 대비되어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퇴행성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급기야 ‘허경영’까지 소환될 정도로 현금 살포 공약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현금성 복지를 ‘매표행위’로 비난하고 재정 건전성을 그토록 강조해온 보수야당 후보들이 더 앞장서고 있다. 나경원은 1억원대 결혼·출산 지원을 공약, ‘나경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놀라운(?) 건 “미래를 위해서는 나경영이 돼도 좋다”(나경원)는 대응이다. 소위 ‘허경영식’ 포퓰리즘 공약을 내거는 게 서울시장 선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에 민생이 힘들어지면 ‘욕망의 정치’는 맹렬하게 움틀 수밖에 없다. 목전의 혜택을 부각하고 단기 이익에 초점을 두는 포퓰리즘 정책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개발 경쟁이나 선심성 현금 공약에서 여야 후보의 차이를 크게 구분하기 힘든 이유다.

흘러가는 양상을 보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개발 정치’를 호출하고 포퓰리즘 공약의 위력을 입증하는 부정적 의미의 계기적 선거가 될 공산이 커졌다. 우울한 건, 그게 내년 3월 대선에 나쁜 이정표로 분명 작용할 것이란 점이다.

양권모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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